영화 HOPE
저는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웠습니다. 올해 본 영화중에서는 최고였다고 해도 될것 같습니다.
OTT보다는 극장에서 보는게 맞는 영화라 생각되고
감독의 의도나 주제 같은거 제쳐 놓더라도
그냥 액션 크리쳐 영화로서도 지루하지 않고 봤습니다.
봉준호 미키17은 지루했었고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헐리우드 특유의 뻔한 진행이었다고 생각했는데
HOPE는 2시간 반, 긴 상영시간인데도 한순간도 집중이 풀어지지 않았어요.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기대하면서 봤던것 같습니다.
배경
감독은 "스마트폰이 없는 70-80년대"가 배경이라고 했습니다.
호포항이라고 표기된 남해지역 다도해 같은 섬과 복잡한 해안선이 있는 항구마을.
그러면서 DMZ가 가까운 지뢰가 깔린 지역이 인접해있고
도로를 따라 높은 시점에서 보면 강원도 느낌의 산간지역이면서
또 캐나다나 북유럽 같은 큰 침엽수가 빽빽한 원시림의 넓은 숲이 근처에 존재하고
1980년대 한국의 시골에는 있을수가 없는 품종의 말이나
픽업트럭을 타고 사냥을 하는 북미 느낌 복장의 청년들,
모신나강, 칼빈, 샷건과 M16유탄발사기와
심지어 대전차무기를 동시에 쓰는 맞지 않는 설정.
감독 인터뷰에 "그 곳이 지구라고 한적은 없다" 라고 했던걸 보면
이 공간이 현실이지 않아도 되는 곳.
실제 공간이 아닌 꿈이나 무의식 속처럼
사실여부가 중요하지 않은 배경설정이지 않을까.
성기나 범석이 아무리 해도 죽지 않고 살아있는 이유가
그것이 그런 비현실 속의 공간이고
그런 비현실을 그리고 있는 의식의 주체를 반영하는 인물이기 때문이 아닌가
꿈에서 '나'는 아무리 절벽에서 떨어져도 죽지않는 것처럼
현실에 전혀 맞지 않는 부조화 스러운 소재들이 섞여있는 것도
마치 무의식속에서 무작위로 생각나는대로 꺼내와서 적용된 경우라면...
액션과 영상미
국내외 A급 배우들을 섭외하면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1/10 이하의 예산으로 만들어야 하는
그수준의 영상을 가정하면 만족 스러웠다고 생각합니다.
첫 장면에서 논두렁 길에 죽은 소의 표현이 너무 허술해서 실망했었고
이후 몇몇 뻔한 몬스터 연출에서 B급 느낌이 나서 몰입이 방해되긴 했어도
역동적이고 빠르게 설정된 액션과 카메라 워크, 미려한 영상미는
단점을 충분히 상쇄했다고 하고싶네요.
좁고 굽은 마을길을 미친것 처럼 질주하는 스텔라 경찰차의 드리프트나
차량 문짝뒤에 제대로 견착하고 M16을 갈기는 성애는 멋졌습니다.
몬스터의 압도적인 스피드와 힘의 물리적 표현도 좋았고
곧은 나무사이로 비치는 역광을 뚫고 질주하는 말도 멋있었구요.
거대한 함선이 추락하면서 지면을 파고들어 지각이 들어올려지는 장면의 CG도 훌륭했습니다.
화면 하나하나 인물 하나하나 색감이며 구도며 멋지고 아름답게 표현하려고 했던것 같습니다.
특히 사운드 이펙트도 좋았어요.
귓가에서 터질듯한 금속 볼트액션 총소리, 공간을 울리는 몬스터 울음소리. 멀리서 들리는 폭발음.
극장에서 봐야 하는 이유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초반의 액션은 시간을 많이 할애해서 정성스럽게 만들었다면 마지막 고속도로 추격신은 돈과 시간에 쫓겨서 만든것이 아닌가....??)
희망
영화는 진행을 이끌고 가는 범석의 시점에서 해석되도록 하고 있는데
관객은 범석과 같이 마을을 부수고 이유없이 사람들을 죽이는 어떤 것에
두려움과 적대적이고 공격적인 시각을 가지게 되고
다른 영화들에서 처럼 괴물들을 물리치고 평화를 되찾길 바라죠.
그 시점에서 관객과 등장인물들의 희망은 괴물들을 '죽이고' 평화를 되찾는 것이 됩니다.
'괴물' 의 입장에서는 인간에 의해 황제의 아이가 죽임을 당하고 그 시체까지 훔쳐갔기에
인간에게 그 죄값을 되갚아 주고 죽은 황태자를 되살리는 것이 그들의 희망입니다.
두 희망은 각자의 입장에서 악이 아닌 선과 정의로 인식되지만 양립할수 없고
또 그 시작은 하찮고 무지한 한쪽의 일탈로 부터 시작되어
그 집단내에서 왜곡되고 잘못 전달되는 것으로 확대되고
극단으로 치닫는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현실에서 무수히 벌어지는 사회 집단 간의 반목과 갈등의 구조와 닮아 있습니다.
양쪽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정의라 할수 있지만 상대의 입장에선
극악하게 잔인하고 받아들일수 없는 일이니까요.
다리가 잘리고 트럭 바퀴에 갈려 시체가 된 괴물은 동네 허름한 창고에 아무렇게나 옮겨져
돌팔이 검시관에게 해부를 당합니다.
끔찍한 악취를 풍기는 추악한 모습이기에
아무렇게나 톱에 잘리고 배를 열어서 장기를 뜯어내어
우리가 아는 '종'이 아니라고 결론내립니다.
성별을 확인하기 위해 사타구니를 들추는 장면은
대상을 향한 극단적인 멸시와 존엄성의 파괴를 담은 장면이지만
그 시점에서 관객에겐 그것들은 죽여야 하는 대상이었으니 당연하고 코믹한 상황일 뿐입니다.
그장면은 영화 후반부에 조르와 마베이요 대화씬 이후의 시점에서는
참혹한 죽음과 유린의 관점으로도 볼수 있게 됩니다.
고문당하고 죽임당했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전쟁의 희생자처럼 보이기도 하구요.
일제강점기 식민지 사람들을 끌고가서 신체 실험을 했던 한장면 처럼 보일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양배
총으로 동물을 사냥한다는 점에서 다른 마을의 청년들과 같지만
어딘가 모자르고 어눌한 타지의 사투리에 마네킹과 동물시체 같은 온갖 물건을 쌓아두고 있는 집,
더럽고 추한 몰골을 보면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기도 합니다.
영화속의 범석과 다른등장인물들이 그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양배는 그 집단속에 비해 일반적이지 않은
모자르고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수 있게 됩니다.
그런 그가 시덥지 않은 이유로 외계인의 황태자를 죽이고 시체를 훔쳐 숨김으로서
모든 파괴와 살육을 일으키는 트리거를 누르는 역할을 합니다.
그는 인간을 대표하지 않지만 외부에서는 그를 인간 집단을 성격을 인식하게 하는 존재가 되어
하찮고 어리석은 일부가 전체에 갈등과 분쟁, 파괴가 이어지게 하고
그런 의도가 없었던 집단의 다른 모든 이들도 그런 파괴의 과정에 휘말리게 합니다.
인간 사회의 갈등과 분열, 전쟁 과정과 닮아 있다고 생각됩니다.
양배는 고양이를 살리기 위해 성기를 죽이는 똑같은 짓을 반복합니다.
어떤것이 더 중요하고 어떤것이 덜 중요한지 구분하지 못하는 무지에 의해 일어나는 비극에
모두가 고통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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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순간 희망하지만 매 순간 좌절되는 연속"
이 우리가 가지는 희망의 모습이지만
"보이지 않은 것들의 증거"로 믿음을 가진다면
희망은 유지될수 있다 하는것이 마지막 장면의 조르 대사의 의미인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베이오에게 운명을 바꾸라고 명령하고 그는 자신의 생명을 희생할 각오를 조르에게 보여줍니다.
이 시점에서 외계인들은 추하고 악취가 진동하는 파괴적인 존재가 아니라
믿음과 신념, 운명과 종교, 희생과 헌신 같은 개념을 가진 고등한 존재로서 인식되고
영화 제목 HOPE는 더이상 인간의 희망이 아닌 외계인들 시각에서의 희망으로 보이게 됩니다.
그래서 전체 이야기를 조르나 마베이오 입장에서 다시 돌아 볼수 있도록.
범석은 이런 관점의 변화를 유일하게 보여주는 인물이며
마지막 장면에서 마음이 좀 그렇다며 다시 힘내자는 성애에게 입다물라고 합니다.
외계인의 신체에 붙은 인간의 얼굴은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불쾌한 골짜기를 만든것 같지만
괴물의 신체에 괴물의 얼굴이 아니라
굳이 실제 배우를 섭외하고 모션캡쳐를 통해 실제 날것의 인간의 표정과 눈빛을 그대로 재현한것은
영화 초반부터 끝나기 직전까지 우리와 다르다고 여겨졌던 존재들.
쥬라기공원의 공룡과도 같은 교류하지 않는 파괴자, 이질적인 존재로서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존재로서 관객 스스로 그들 시점으로의 깊은 감정의 공감을 끌어내기 위한 장치로 생각됩니다.
케이팝데몬헌터스 what it sounds like 장면에서 루미의 표정에 관객들이 깊은 감정의 공감을 했던 것 처럼
HOPE의 조르 마베이요 대화씬에서 조르의 너무나 인간과 같은 표정의 감정 표현은 같은 역할을 했을것입니다.
그 얼굴은 바미기르처럼 추하고 못생기지 않았으며 아름답고 품위있었기에
관객들은 영화 초반부보다 그들에게 더 깊이 감정이입이 되는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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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부에 사냥의 대상이 된 존재들의 입장에서 모든 사건들을 다시 돌아보게 해주는 이런 구조는
영화를 보기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었고
극적으로 세계관을 크게 확장시켜주면서 많은 가능성들을 열어 기대하게 해주었습니다.
모든 설정과 개연성이 무결하고 세상에 있을법한 이야기로
파괴를 일삼던 적들이 등장인물들에 의해 물리쳐지고 평화가 찾아온다는 닫히고 뻔한 결말 보다는
불완전한 설정이지만 은유적이고 다양한 관점과 많은 가능성을 열어놓는 결말이 더 흥미롭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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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장르를 파괴하고 새로운 형태의 영화를 상상하고 기획하고 만드는 과정은
현실적으로 많이 어려웠을것 같은데
특히 한국영화로서 SF 장르 소재를 도입하는것은 9할 이상 비난받고
상업적으로도 실패하는 과정을 알면서도 시도했다는 것은 대단한것 같습니다.
문화도 산업도 뛰어난 인재들의 수고로 많은 사람이 혜택받는 것을 다시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