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엄마랑 사는 35세 미혼 딸인데 제가 느끼는 불편한 감정에 대해(긴 글 주의)

  어린 시절 아버지의 양육 부재로 엄마와 친할머니 손에서 자랐습니다. 저는 딸 둘 중 3살 터울의 둘째인데, 외향적이고 활달한 언니와 달리 밝지만 내향적인 성격이어서 주로 집에서 놀고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나 집안 분위기를 관찰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아빠는 가정을 떠나 바깥에서 돌아다니며 지내셨고, 가끔씩 들러 맛있는 간식을 우리에게 주고는 잠시 후 다시 본인의 삶으로 가는 모습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가끔 낮에 할머니와 집에 있을 때면 빚쟁이가 찾아오기도 했고요.

엄마는 다행인지 안정적인 직장인이었고, 홀로 두 자녀를 돌보는 데 드는 모든 일을 책임져야 했습니다. 그리고 아빠 문제로 감정적으로도 지친 탓에 퇴근 후엔 많이 누워 계시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괜찮으실 땐 맛있는 저녁을 늘 함께해 주셨죠. 그럴 때면 둘째인 저는 그간에 고팠던 엄마의 애정이 그리워 늘 엄마 옆에 찰싹 붙어서 말도 걸고 따라다녔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세월은 지나 그 아이들과 부모는 그럭저럭 잘 성장했습니다. 여전히 아빠는 비슷하게 살고 계시며, 엄마의 넓은 마음 때문인지 혹은 어떤 이유에서인가 이혼은 하지 않은 채로 그렇게 가끔 집으로 찾아와서 맛있는 걸 주고 가십니다. 더 이상 빚쟁이가 찾아와서 독촉하진 않지만, 가끔 돈이 없다며 20만 원만 달라고 하기도 합니다.

 

엄마는 여러 남매의 맏이로 자랐습니다. 당시 살림 밑천이던 맏이는 똑똑했지만, 동생들을 위해 가고 싶던 교대에 가지 않고 20살부터 일을 시작했습니다. 아마 엄마의 마음 속에는 '맏이는 동생들을 위해 희생하는 불쌍한 존재다'라는 의식이 있는지도 모른다고 둘째딸인 저는 짐작하기도 합니다.

엄마는 두 딸 중 첫째 딸에게 늘 마음이 쓰입니다. 30살에 결혼하여 두 딸을 낳아 기르는 첫째 딸에게서 자신의 모습이 보이는가 봅니다. 하지만 내색을 안 하려 합니다. 집에 있는 둘째 딸이 늘 서운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첫째와 그 두 손녀들에게 더 많은 걸 주고 함께하고 싶지만 둘째인 제 눈치를 봅니다.

엄마 씨가 보기에, 저는 예민하고 이해가 안 되는 말을 종종 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어린 시절 언니에게 많이.. 오랫동안 맞고 자랐다고, 그걸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노력을 많이 했다고 하는데 엄마는 전혀 몰랐다고 합니다. 저도 그걸 이해합니다. 낮에 일어났던 오랫 기간의, 가끔씩 일어나던 일들이고, 당시 엄마는 직장 일로 바쁘고 집에 와도 힘든 상황이어서 몰랐을거라고요.. 사실 저도 지나고 보니 그게 학대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제가 이 얘기를 하면 엄마는 지난 일을 자꾸 들춘다고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제가 엄마와 언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증명해야할 것 같아 마음에 힘이 듭니다.

 

저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타고난 성격이 좀 희생적이고 소심한 편, 여린 편입니다. 엄마는 오히려 그게 걱정이 되면서도 그래서 좋기도 합니다. 둘째인 제가 30대 중반인 지금까지 집에서 지내는데, 그간 가족을 위해 집안일을 도맡아 해왔습니다. 20대 땐 학비와 용돈도 다 알아서 해결하고 집에 장보는 것, 음식하는 일도 모두 둘째인 제가 했습니다. 아무도 하라고 안 했지만, 가족들의 건강도 안 좋고 모두의 삶을 밝게 하고자 자처해서 한 희생이었습니다. 그게 정말 좋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너무 자신의 삶이 없어지는 것 같아 최근 4년 정도는 생활비까지 내기보단, 오랜 직장 생활로 건강이 안 좋은 엄마를 위해 식사나 다른 것들을 챙기는 것만 하기로 했습니다.

 

엄마 역시 둘째의 그런 희생에 익숙한 반면, 결혼 안 한 미혼 자녀와 사는 당연한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고요. 그에 더해 엄마는 '둘째는 늘 내 곁에 당연히 있어 주는 존재, 알아서 제 앞가림 잘하고 나를 챙겨주는 기특하지만 편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또 엄마 옆에 늘 함께 있으니 경제적으로 생활비를 아끼므로 둘째가 첫째에 비해 득을 본다고 생각하고요.

그러나 제 입장은 다릅니다. 저는 차라리 나가서 사는 게 경제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나가 있으면 지금보다 일을 조금 더 할 시간이 있어서 플러스마이너스 비슷합니다. 신경 쓰지 않을 부분들도 생기고요.

최근에 알게 된 것은, 엄마가 매달 60만 원 이상의 금액을 언니를 위해 6년 이상 모으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받는 언니도 한마디 저에게 한 적은 없고, 다만 불현듯 스치는 기억은... "너는 엄마가 집 준댔어.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라고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어떤 언니의 말이 기억납니다. 당시엔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말인가 싶어, "언니, 난 들은 적도 없는 이야기고 엄마 돌아가시면 30년 후인데 나도 그때 60이 넘어. 무슨 이야기야?" 하고 넘겼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언니랑 엄마가 서로 뭘 사주고 할 때 제가 신경 쓰였는지, 옆에서 오히려 1만 원, 2만 원을 칼같이 이체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마치 제게 보여주듯이, 우린 주고받은 거 없다는 듯한 뉘앙스로요. 

그것도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엄마는 뭔가 크게 편애를 하고 있어서 스스로 찔려서 그러신 것 같습니다.

 

딸이 둘이지만 언니는 자신의 가정을 돌보느라 바쁘니까 당연히 그 외의 집안의 일은 제 몫입니다. 오히려 엄마는 그런 언니의 고단함이 안쓰러우실 겁니다. 제가 보기엔 언니는 좋은 남편, 아이들과 좋은 곳에 살며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사는 보통의 사람들입니다. 동생은 엄마가 집준다고 했으니 엄마한테 신경 못써도, 동생한테 맡겨도 '걘 걱정안해도 돼 엄마가 집준댔어'라는 먼 훗날 알 수 없고 동생은 원하지도 않는 약속에 마음의 짐은 덜어벼렸습니다. 그래서 사실 언니도 본인이 덜 받았다고 느끼는지 가끔 저런 말이 뚱단지같이 튀어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편애한다 해도 엄마는 제게도 정말 잘해주십니다. 그냥 제가 너무 섭섭한 이유는 아마, 아직 엄마의 사랑이 고파서... 좀 더 같이 살면 엄마의 진심을 알 수 있을까 하는 기대로 계속 같이 살았던 이 기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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