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밥, 밥, 밥. 매일 하는 집밥에 지쳐서 아침에 밥하기 싫은 마음에 남편과 둘이 한식집에 갔어요.
평소에 스몰 토크가 전혀 안 되는 남편이라 차 안에서는 언제나 묵언수행을 하게 돼요.
침묵이 흐를 때 숨 막히는 그 고통을 동반한 채 식당에 도착했지요.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서 주차를 하는 남편에게 "차에 우산 있지?" 하고 물으니까 있대요.
그러고는 시동을 끄자마자 후다닥 트렁크로 뛰어가는 거예요.
그 모습을 보고 속으로 '와이프 비 안 맞게 해주려나 보다. 나이 들더니 변하긴 변하나 봐' 하고 내심 기대했어요.
그런데 차 문을 열어보니 남편이 제 곁에 없더라고요.
어디 있나 보니, 이미 차 앞쪽에서 본인 혼자 우산을 쓰고 제가 자기 쪽으로 걸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시선은 그저 식당에 사람이 많은지 안 많은지만 살피면서요.
타인의 감정을 배려하지 못하는 면이 이렇게 나타난답니다.
이제는 섭섭한 걸 하나하나 말해줘야겠다 싶어서,
웨이팅을 하면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어요.
또 버럭 화를 낼 걸 예측하고 최대한 톤을 낮춰서 차분하게 말했죠. "비가 올 때엔 내 자리 쪽으로 와서 우산을 같이 씌워줘야지."
하지만 제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편은 버럭 화를 내면서 "알았으니 그만해!"라고 소리를 질렀어요.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성향이 이렇게 사소한 대화에서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 하기 때문에 싫은 소리는 조금도 듣지를 못해요. 그러니 자기반성이나 자아성찰이 참 어렵지요.
이렇게 가슴에 화가 잔뜩 치민 상태에서 밥을 먹는데 그냥 서러움이 밀려왔어요. 그냥 울고 싶었어요.
부부가 사소한 대화 하나 되지 않는 이 현실이 너무 참담해서, 눈물을 삼키며 꾸역꾸역 밥을 먹었습니다.
게다가 남편은 밥 먹는 속도조절도 안 돼요.
ADHD는 행동의 모든 면에서 조절이 안 된다는 걸 보여줍니다.
우리보다 일찍 온 사람들은 아직도 식사 중인데, 제일 늦게 들어간 우리가 가장 빨리 식당을 나왔어요.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으니 빨리 비켜주쟤요.
정작 마누라 감정은 전혀 헤아리지 못하면서, 남 걱정은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ADHD는 이렇듯 아이처럼 순수합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누가 조금이라도 끼어들 조짐이 보이면 클랙슨을 '빵!' 하고 크게 눌러대요.
클랙슨 누르는 습관 좀 고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길게 얘기하지도 못해요. 한마디 더 붙이면 또 불같이 화를 낼 테니까요.
이게 바로 병원에서 성인 ADHD 판정을 받은 남편과 살아가며 겪는, 아주 짧은 일상의 에피소드랍니다.
ADHD에 대해 궁금한 거 있으면 질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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