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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의 보완수사권을 박탈한다고 한다. 아무리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어도 검사는 피의자를 직접 불러 조사할 수 없게 된다. 법이 개정되면 검사는 피의자를 단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채 서류 기록만으로 기소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중대한 판단이 사건 서류만으로 내려지는 셈이다.
이것이 과연 온당한가. 피의자가 검사에게 다시 한번 보완수사를 요청할 기회는, 어떤 의미에서는 피의자 자신의 권리이기도 하다. 그 권리를 박탈하는 것을 ‘개혁’이라 부를 수 있는가.
장애인과 서민 사건을 주로 맡아온 현장 인권변호사들 다수가 보완수사권 박탈에 반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가 전하는 아래 사례를 보라. 이런 사례가 한둘이겠는가. 이런 현실을 목도하고도 박탈을 주장한다면, 당신은 국가와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다.
이것은 개혁이 아니다. 국가의 형사사법 시스템을 망가트리는 개악이다. 다음 선거에서 반드시 국민들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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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봐야 하는 일 –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 26>
지적장애가 있는 21살 청년을 변호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같은 동네에 살던 미성년자와 함께 44건의 빈집털이 절도를 저질렀다며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그러나 1심, 2심, 3심 모두 무죄였습니다.
당시 그 청년의 어머니가 제게 자주 하던 말이 있습니다. 같은 내용을 법원에 탄원서로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OO이를 21년간 눈물로 키웠습니다. 장애인으로 태어난 것도 속이 상한데 남들한테 이용만 당하고 절도범으로 누명까지 쓰게 되어 너무 말문이 막힙니다. 저는 OO이를 지금까지 키워오면서 제가 가슴에 항상 담고 살고 있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죽으면 그때 OO이 목숨까지 같이 간다는 마음 먹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이런 마음을 가슴에 두고 살겠습니까.”
오랜만에 사건 기록을 다시 꺼내 읽었습니다. 그 문장도, 그 말을 하던 어머니의 표정도 잊히지 않습니다.
지난해 7월 기사로 소개된 검찰의 보완수사 사례도 같은 문제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지적장애가 있는 20대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인터넷 게임을 통해 알게 된 사람에게 속고, 협박당하고, 가혹행위까지 당했습니다. 자기 이름으로 대출을 받았고, 그 돈을 빼앗겼습니다. 나중에는 가해자의 지시에 따라 다른 사람을 불러내는 일에도 이용되었습니다.
경찰 수사에서 그는 피해자이면서도 공범으로 판단되었습니다. 자기 명의로 대출을 받은 부분에서는 피해자였지만, 다른 피해자를 불러낸 부분에서는 범행에 가담한 사람으로 본 것입니다.
다른 피해자를 데려왔고, 가해자의 말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기록’만 보면 범행에 협조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그는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판단하기 어려운 지적장애인이었습니다. 폭력과 협박 속에서 상대의 지시에 끌려다녔습니다. 스스로 범죄를 계획하거나 이익을 나눈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범죄에 이용당한 피해자였습니다.
검찰은 보완수사를 통해 이 부분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당사자의 장애 특성, 심리 상태, 이해 능력, 당시의 지배관계와 진술의 맥락을 살폈습니다.
그 결과 공범으로 몰렸던 그는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고, 실제 가해자에게는 더 무거운 책임이 물어졌습니다.
이처럼 등록된 장애인의 경우에도 말과 행동의 의미를 해석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저는 수원 10대 소녀 상해치사사건,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사건,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 등에서 ‘경계선 지능인’을 경험했습니다.
경계선 지능인은 일상생활에서 비장애인과 확연히 구별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낯설거나 스트레스가 큰 상황에서는 자신의 지적 능력을 안정적으로 발휘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권위적인 분위기 속에서 질문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대답하거나, 상대가 원하는 방향으로 쉽게 순응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런데 경계선 지능인은 「장애인복지법」상 장애 등록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보호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개인의 상태와 상황에 따라 충분한 배려와 조력이 필요한 경우가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취약성이 기록만 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건은 반드시 사람을 봐야 합니다.
그 사람의 얼굴을 보고, 말의 속도를 보고, 질문을 이해하는 방식을 보아야 합니다. 사건 당시 누구의 지배 아래 있었는지, 어떤 두려움 속에서 행동했는지, 그 행동에 이르게 된 관계와 맥락을 살펴야 합니다.
보완수사는 바로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하는 절차입니다. 그러니 보완수사권을 단순히 빼앗아야 할 권한으로만 보지 말아 주십시오. 이것은 기관 사이의 권한 다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현실에서는 약자를 보호하는 촘촘한 안전망이 될 수 있습니다.
경찰과 검찰이 함께 기록만으로 보이지 않는 사람의 취약성을 확인하고, 보호받아야 할 약자가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제도 설계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부모가 “내가 죽으면 이 아이도 함께 데려가야 한다”는 말을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하는 사회라면, 우리는 아직 충분히 안전한 공동체를 만들지 못한 것입니다.
그 절망을 조금이라도 덜어내는 것이 국가의 책임이고, 사법의 책임이며, 공동체의 책임입니다.
기록만 보고 판단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을 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