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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그래도, 아직은 우리에게 멸공(滅共)이 더 옳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멸공”이란 단어를 사용하면 시대에 뒤떨어졌다거나 냉전 시대의 논리에 갇혔다는 비판을 받기 일쑤다. 심하게는 대한민국에서 격리되어야 할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취급받기도 한다. 우리 사회가 무너지는 징조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친공”(親共) 하면, 세련된 사람이고, “멸공”을 말하면 구시대적이고 악마적인 사람이라는 가짜 연출에 갇힌 것이다. 그러나 ‘멸공(滅共)’이라는 단어에 발끈하며 “철 지난 냉전 논리”, “색깔론”, “퇴행적 시각”이라 치부하는 태도야말로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정체성의 혼란과 지적 지체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다.
‘멸공’을 구시대적 단어라 비판하는 자들은 1991년 소련 붕괴로 냉전이 끝났으니 이념의 시대도 끝났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간판만 바꾼 변종 전체주의를 보지 못하는 눈먼 시각이다. 겉으로는 자본주의를 하는 척하지만, 일당 독재와 언론 통제로 삼권분립을 무너뜨린 중국의 '국가자본주의'나 러시아의 행태는 본질적으로 공산주의적 통제 메커니즘을 그대로 쓰고 있다. 간판이 바뀌었다고 해서 권력의 폭주라는 본질이 바뀌지 않듯, 형태가 바뀌었을 뿐인 전체주의적 위협에 맞서는 단어가 바로 ‘멸공’이다.
‘멸공’을 욕하는 사람들은 대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친공’(親共)을 실행하거나 동조하는 사람으로서, 대한민국을 중심에 놓는 입장에서 보면 사악하다. ‘친공’을 실행하거나 동조하지 않고,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면서도 아무 말도 안 하는 사람은 나태하고 비겁하다. 사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이 정도로 흔들리게 된 데에는 나태하고 비겁한 사람들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
칼 포퍼는 그의 저서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무제한의 관용은 반드시 관용의 소멸을 부른다. 관용하지 않는 독재·전체주의 세력에게까지 무제한의 관용을 베푼다면 자유민주주의의 정체성은 통째로 파괴당할 것”이라며 ‘관용의 역설’을 경고했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 자유의 적을 멸하겠다는 결의야말로 열린 사회를 수호하는 가장 고도의 논리적 결단이다.
대한민국은 “멸공”을 외치며 공산주의를 물리친 나라다. 그 전쟁이 끝나지 않은 휴전상태이다. 그동안 대한민국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멸공”을 말하는 것이 두렵게 되었는가. 나라는 빠르게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적인 전체주의 사회로 전락하고 있다. 삼권분립이 무너지고, 표현의 자유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