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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이미 말의 질서가 무너졌다. 말의 질서가 무너진 상황에서 이런 “말”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무의미할 것임을 알면서도, 백척간두 진일보의 심정으로 한다.
인류의 문명사는 성역의 경계가 끊임없이 해체되고 축소되어 온 과정이다. 여기서 성역을 단순한 종교적 의미를 넘어 ‘인간이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고 믿었던 절대적인 영역, 미지의 영역, 혹은 금기’로 확장해 보면, 문명의 발전 단계마다 성역이 어떻게 줄어들었는지가 명확히 드러난다.
과거 인간에게 대자연은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 즉 신성이 깃든 성역이었다. 하지만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면서 자연은 경배의 대상에서 분석과 개발의 대상으로 변모하여, 남아있는 성역이 없다.
지식과 진리 역시 역사적으로는 제사장이나 귀족 같은 특정 계급의 전유물이자 성역이었다. 그러나 인쇄술의 발명과 종교개혁을 거쳐 현대의 인터넷과 AI에 이르기까지, 지식의 대중화는 권력이 쳐두었던 성역의 울타리를 무너뜨렸다.
가장 늦게까지 성역으로 남아있던 인간의 영역, 바로 생명과 정신도 예외는 아니다. 과거에 생명의 탄생과 죽음은 오직 신의 영역이었지만, 지금은 유전자 편집과 줄기세포 기술로 인해 인간이 직접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이 되었다. “인간의 마음은 영혼의 영역”이라 믿었던 것 또한 뇌과학과 정신분석학, 그리고 인간의 사고 과정을 모방하는 AI의 등장으로 인해 생물학적·데이터 메커니즘으로 환원되고 있다. 이처럼 성역이 줄어들면서 인류는 비로소 자유와 합리성, 그리고 거대한 편리함을 얻었으며, 더이상 미신에 떨거나 불합리한 권위에 복종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맞이했다.
이러한 성역의 해체와 무화(無化)를 가장 완벽하게 제도화하고 공식 선언한 정치 체제가 바로 자유민주주의다. 자유민주주의는 권력의 출처에서 신비주의와 신성함을 완전히 걷어냈다. 권력은 하늘이나 혈통 같은 성역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평범한 시민들의 표라는 지극히 세속적이고 수치화된 계산을 통해서만 정당성을 얻는다. 정해진 임기가 지나면 그 권력이 마법처럼 소멸한다는 사실 자체가 권력의 신성함을 원천 차단하는 장치다. 반면, 독재자나 전체주의자들이 꼭 임기를 연장하여 장기 집권을 꿈꾸는 것은 이 성역 없는 규칙을 거부하려는 속성 때문이다.
과거의 체제들이 통치자의 도덕성이나 신성에 의존했다면, 자유민주주의는 그 어떤 인간도 완벽하지 않으며, 권력은 반드시 타락한다는 철저한 의심과 불신을 바탕으로 설계되었다. 입법·사법·행정의 삼권분립은 권력이 하나의 성역이 되지 않도록 쪼개놓은 제도적 장치이며, 왕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고 하는 과거의 성역을 깨고 최고 권력자마저 법 앞에 무릎 꿇리는 법치주의를 작동시킨다. 독재자나 전체주의자가 반드시 이 삼권분립을 무너뜨리고 자신을 법 위에 올려놓으려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유민주주의의 철학적 기반은 일종의 합리적 회의주의다. 이 체제에서는 그 누구의 사상도, 그 어떤 종교나 이념도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절대 존엄의 성역이 될 수 없다. 모든 의견은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고, 자유로운 비판과 조롱의 대상이 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당신의 의견에 반대하지만, 당신이 그 의견을 말할 자유를 위해 싸우겠다”는 볼테르의 격언은, 다른 말로 하면 “당신이 신성시하는 선(善)조차 내 비판의 칼날을 피할 수 없다”는 성역 해체의 선언이기도 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정치권 일각에서 흘러나오는 “5.18은 민주주의의 성역이 맞다”는 주장들은 심각한 우려를 자아낸다. 이는 5.18 민주화운동을 자신들의 정치적 자산으로 삼는 세력의 만용이자 명백한 지적 퇴행이다. 모든 신성불가침을 거부하고 끊임없이 의심하며 비판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이라는 기준에서 보면, 특정 역사적 사건을 비판이나 토론이 불가능한 성역으로 규정하는 발언은 민주주의의 작동 원리 자체를 부정하는 처사다.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은 그 어떤 진리나 가치도 공론장에서 비판, 검증,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원칙에 있다. 철학자 칼 포퍼가 말한 ‘열린 사회는 바로 이 비판 가능성이 중단 없이 보장되는 사회다. 과학이든 역사든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반증 가능성이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 "여기는 성역이니 건드리지 마라"는 선언은 공동체의 합리적 이성과 토론을 마비시킬 뿐이다.
역사적 사건에 단 하나의 정답만을 강요하고 이에 대한 이견을 죄악시하는 태도는, 자유민주주의가 그토록 격렬하게 싸워 극복해 온 과거의 종교재판이나 전체주의적 속성과 매우 닮았다. 결국, 민주주의를 고양한다는 명목으로 특정 사건을 ’성역‘의 골방에 가두려는 시도는, 역설적으로 민주주의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스스로 옥죄는 치명적인 모순이자 퇴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