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펌글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27-직업공무원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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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공무원의 역할 -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 27>

 

검찰개혁추진단이 형사소송법 개정 정부안을 내지 않기로 했다는 소식을 보며, 저는 이것을 단순한 정치적 선택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대의민주주의 아래에서 입법의 최종 책임은 국회에 있습니다. 국회가 최종적으로 어떤 법을 만들든, 공무원은 결정된 법과 정책을 성실히 집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공무원이 입법 과정에서 침묵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헌법은 공무원을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라고 하면서,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직업공무원제도는 공무원을 정치권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제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정치적 판단만으로 국가작용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대법원도 직업공무원제도를 “정권교체에 따른 국가작용의 중단과 혼란을 예방”하고 “일관성 있는 공무수행의 독자성”을 유지하기 위한 제도라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대법원 2024. 1. 4. 선고 2022두65092 판결].

 

그렇다면 직업공무원의 역할은 분명합니다. 정치가 결정하기 전에 실무 현실을 말해야 하고, 예상되는 혼란을 기록해야 합니다. 저는 이것이 헌법이 직업공무원제를 보장한 취지라고 생각합니다.

 

검찰개혁추진단은 작년 10월 1일 공식 출범했습니다. 국조실·기재부·법무부·행안부·인사처·법제처 등 관계기관 공무원 51명으로 구성됐고, 그 업무에는 공소청·중수청 설치법 제정안 마련뿐 아니라 형사소송법 개정안 마련, 180여 개 관계 법률과 900여 개 하위법령 정비, 조직·정원·예산·시스템 구축 지원까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추진단이, 형사사법체계의 핵심을 바꾸는 형사소송법 개정에 관해 정부안을 내지 않겠다고 합니다.

 

애초에 추진단은 형사소송법 개정 등 2단계 입법에 대해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고, 상반기 중 정부안을 마련해 6월 이후 입법예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대한변협, 경실련, 형사법학회 등 관련 단체들과 토론회를 열고, 인식조사와 국민 여론조사 등을 통해 의견을 반영하겠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국민 4천 명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인식조사도 했습니다. 그 조사에서는 보완수사권을 긍정적으로 보는 의견과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 현 형사사법체계에 대한 불신, 중대범죄 대응 역량 약화와 사건 처리 지연에 대한 우려 등이 함께 드러났습니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규모 인식조사는 왜 했습니까. 공개토론회는 왜 열었습니까. 관계부처 협의와 전문가 자문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습니까.

 

결국 국회에 “알아서 하라”고 넘길 것이었다면, 그 과정은 실질적 숙의가 아니라 절차적 명분 쌓기에 그친 것 아닙니까.

 

정치권이 실무 현실을 충분히 살피지 않은 채 형사사법체계에 중대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 입법을 강행하려는 국면이라면, 적어도 그 입법이 실무 현실과 충돌하는 지점만큼은 정직하게 기록하고 경고해야 합니다.

 

이 제도 변화가 현실에서 안정적으로 안착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면, 추진단은 정부안을 내지 않을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당당히 안을 내고, 국회와 국민 앞에서 설명했어야 합니다.

 

반대로 현장에 혼란이 예상되고, 여러 쟁점에 대해 판단이 갈렸다면, 그럴수록 정부안 또는 최소한 쟁점별 검토보고서를 내야 했습니다. 보완수사권을 폐지할 경우 어떤 공백이 생기는지, 보완수사요구권만으로 충분한지, 전건송치 부활은 필요한지, 특별사법경찰관 수사 지휘 문제는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피해자 보호와 사건 지연 방지는 어떤 장치로 보완할 것인지. 이런 내용을 정직하게 제시하는 것이 추진단의 존재 이유였습니다.

 

총리는 지난 6월 25일 “구체적인 제도 설계와 입법은 국회에서 충분한 논의와 숙의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습니다. 또 “정부 내 다양한 견해는 정리하되, 국회의 자유로운 논의를 위해 별도의 정부안을 제출하지 않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바람직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입법은 충분한 숙의 속에서 진행되고 있지 않습니다. 형사사법체계의 근간을 바꾸는 문제임에도, 현장의 충돌 지점과 국민에게 미칠 영향이 차분히 검토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정부 내 다양한 견해가 있었다면, 그것은 국회의 자유로운 논의를 위해서라도 공개되고 제출되어야 합니다. 침묵은 국회의 숙의를 돕는 것이 아니라, 숙의 없는 입법을 방치하는 것입니다.

 

국가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려 한다면, 적어도 그 길의 위험과 비용, 필요한 안전장치만큼은 정직하게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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