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욱도 부장판사 특별기고.
이번 지선에서 강북구 선거관리위원장직을 겸직했다.
[죄송한 건 죄송하지만 아닌 건 아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일이다. 4년에 한 번, 만반의 준비를 거쳐 치르는 전국 단위 선거다. 거기서 투표용지가 부족해 투표가 중단되는 나라가 도대체 나라인가. 참정권을 침해당한 시민들의 황당함과 분노가 이해되고 남는다. 천재지변 때문이라면 또 모른다. 조금 더 신중했다면 예측할 수 있었고 조금 더 기민했다면 막을 수 있었던 일, 명백한 선거관리위원회의 실책이다. 일원으로서 한없이 죄송한 심정이다.
선관위가 일을 제대로 못한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지난 몇년 선거사무에서 보인 난맥상, 석연찮은 인사, 흐트러진 직무 기강, 부족한 해명과 체감되지 않는 시정 노력으로 쌓인 불신이 이 대형 실책을 더더욱 용납할 수 없게 만든 듯하다. 독립 헌법기관이라는 지위와 사법부와의 특수관계에서 비롯된 안이함, 책임의식 부족이 깔려 있는 것 아닌지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 해체 수준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에도 공감한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부정선거론 확산의 호기로 삼으려는 일각의 논리는 납득하기 어렵다. 부정선거론은 선관위를 조직적 투표결과 왜곡의 주범 내지 공범으로 단정한다. 그런데 선관위가 이렇게 무능해서야 어떻게 법망과 수많은 참관인의 눈을 피해 체계적으로 거대한 부정을 저지를 수 있겠는가. 중복투표를 기획하고 투표용지를 바꿔치는 범죄, 꼬리라도 밟히는 날엔 필연코 국가적 재앙을 불러올 부정을 저지르자면 적어도 투표자와 투표용지 수를 제대로 예측, 대비하여 멀쩡한 투표처럼 가장하기라도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특정 성향 유권자의 투표를 막겠다고 투표용지를 안 주는 짓의 ‘가성비’는 어떤가.
실제 선거사무를 경험하거나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들은 안다. 투표에서 개표와 집계, 공표에 이르는 전 과정이 얼마나 철저히 설계됐는지 말이다. 대규모 부정의 소지가 끼어들 틈이 눈곱만큼이라도 있는지 말이다. 모든 절차가 법에 따라 일반에서 공모되거나 정당이 선정한 참관인에게 완벽히 공개된다. 투표참관인을 비롯한 투표소의 십여 명은 부정선거 카르텔 조직원이 아니다. 개표장의 수십 명 개표참관인에게 ‘밀실 개표’란 뚱딴지같은 소리다. 부정선거를 의심하는 누구라도 마음먹으면 몸소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의심의 실체를 들여다보려고도 않으면서 의심을 확대재생산하고 그에 편승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 알고 싶어서 의심하는 것인가. 아니면 의심을 거둘 수 없는 이유가 따로 있는 것인가.
당초 극소수의 주장으로 여겨졌던 부정선거론은 이제 적지 않은 사회적 영향력을 갖게 된 듯하다. 필자의 장인께서 참석하시는 대구 출신 사회지도층 모임에서도 부정선거론이 대세인가 보다. 선관위에서 30여년 근무한 한 사무국장도 장모님으로부터 자네는 그러지 말라는 당부를 들었단다. 이번 개표 현장에서도 우편투표로 접수된 투표용지에 접은 자국이 안 나타났다며 직원의 도움을 받아 한참 투표용지를 확인한 뒤 말없이 떠난 정당 선정 참관인이 있었다. 의심은 검증을 통해 해소되기도 하지만 때로 검증과 무관한 신념이 되기도 한다.
물론 의심하는 이들 역시 주권자인 국민이다. 그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선관위는 의심의 비합리성만을 들어 안주할 것이 아니라 의심을 불식하려 노력을 다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진상은 남김없이 규명돼야 한다. 잘못이 확인된다면 책임도 뒤따라야 한다. 이번 사태로 인한 참정권 침해의 수습, 신뢰 위기의 해결에 정치권과 관계기관이 힘을 모아야 한다. 선거사무에 관여한 한 사람으로서 다른 관계자들과 함께 사죄드린다.
다만 이번 사태가 모든 부정선거 주장까지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시민의 정당한 분노가 왜곡되거나 다른 목적에 이용되지 않기를 바란다. 죄송한 건 죄송하지만 아닌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