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혁명이 일어났다.
1789년, 바스티유 감옥이 무너지던 날. 혁명의 불꽃이 꺼지지 않으려면 지방이 호응해야 했다. 당시 프랑스 인구는 약 2,500만. 그중 파리는 60만이었다. 파리 혼자서는 갈 수 없는 혁명이었다.
파리는 불안했다. *우리만 고립되는 건 아닐까. 우리만 죽게 되는 건 아닐까.*
그때 보주가 나섰다. 알자스 너머, 라인강 기슭의 작은 산악 지방. 혁명정부에 가장 먼저 세금을 냈다. 말 한마디 없이, 돈으로 연대를 선언한 것이다. 파리와 함께 하겠다는 뜻이었다.
그 연대의 정신이 빛을 발했다. 마르세유가 따랐다. 리옹이, 보르도가, 낭트가 이 대열에 합류했다. 마르세유 의용군은 파리로 행진하며 노래를 불렀고, 그 노래가 훗날 프랑스의 국가가 되었다. 지방이 호응하자 비로소 혁명은 혁명이 될 수 있었다.
파리에 보주광장이 지금도 당당히 자리하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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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이 혼자 다 해먹겠다고 선언했다.
서울의 학생들이 일어났다. 시민들도 거리로 나섰다. 1980년 봄, 서울의 공기는 팽팽했다.
파리의 불안처럼, 서울도 불안했다. *우리만 고립되는 건 아닐까. 우리만 죽게 되는 건 아닐까.* 광주가 그 물음에 답했다.
그런데 서울대의 학생들이 해산했다. 스스로 물러났다. 잘난 지성이, 먼저 물러났다.
광주가 고립됐다.
대구가 조용했다. 부산이 조용했다. 대전이 조용했다.
광주에서 사람이 죽었다. 엄청나게 죽었다. 계엄군의 총과 칼 앞에, 연대를 믿었던 사람들이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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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이 흘렀다.
그런데 지금 대구가 광주를 미워한다. 혐오한다. 왜일까.
가해자가 피해자를 미워하는 심리는 보편적이다. 내가 외면한 사람, 내가 버린 사람, 내 침묵이 죽인 사람. 그 얼굴을 마주하는 게 견딜 수 없이 불편할 때, 인간은 그 불편함을 혐오로 바꾼다. 미워하면 외면했던 자신을 정당화할 수 있으니까.
일본이 한국을 미워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까.
보주는 연대했고, 광장에 이름을 얻었다. 대구는 침묵했고, 그 침묵은 지금도 혐오라는 이름으로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