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좋은 직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통 혼자 놀았죠.
전국의 명산은 다 다닌 것 같았어요.
엄마는 언니와 나, 그리고 남동생을 데리고
집에서 가까운 야트막한 산이라도 다녔습니다.
어떤 여인이 과부냐고 묻는 순간
당혹해하던 엄마의 얼굴이 아른아른합니다.
엄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삼남매를 데리고 도서관이라도 다녔습니다.
이토록 오랜 시간이 흘러도 도서관의 냄새와 색감이 생생히 기억나는 걸 보면
여러 번 다니셨겠죠.
아빠는 늘 어딘가 모르게
물가에 내놓은 소년 같았습니다.
IMF 때 사표를 냈어요.
생때같은 자식이 셋이나 되는데.
그 시절 스스로 죽음을 택한 사람들도 많았죠.
진짜 과부로 만들진 않았으니 다행이라 할까요.
좋은 직장이 있었음에도
엄마를 고생시켰던 철없던 내 아빠.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다 자란 제가 용돈이라곤 못 드려도 서운해하진 않으세요.
아무 것도 없는 무일푼의 남자와 결혼을 하고
어쩌다보니 이혼도 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먹고 사는 일이 늘 무섭고 굶어죽을까 걱정이던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출근을 하고 열심히 일을 합니다.
가진 것은 하나 없으나.
사막에 떨어져도 살아남을 사람처럼
씩씩하게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