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년 전 스승님의 눈물을 기억합니다]
1980년 5월, 제가 다니던 대동고등학교에는 박석무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당시 대동고 학생들은 박석무 선생님과 몇몇 선생님의 가르침 속에서 이미 사회와 역사에 눈을 뜨고 있었습니다.
5월 항쟁 이전부터도 학내 문제에 함께 목소리를 내고, 부당함 앞에서 침묵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한편 70년대 유신체제 시절부터 광주 지역 민주화운동의 중심 인물이셨던 선생님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배후 인물’로 지목되어 차가운 옥고를 치르고 계셨습니다.
선생님의 구속 소식에 친구 몇몇이 모였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그때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통장을 만들게 하고, 매달 의무적으로 저축을 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3년 동안 모은 그 통장을 헐었습니다.
그 돈을 사모님께 드리며 선생님 영치금으로 써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나중에 사모님께서 면회를 가 이 이야기를 전하셨을 때, 선생님께서 한참을 우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저희 또한 함께 울었습니다.
1980년 5월, 전두환 신군부에 맞서는 광주의 함성과 분노는 거리마다 가득했고, 우리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품은 채 역사의 복판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엄마, 조국이 저를 불러요.”
어머니께 이 말을 남기고 금남로로 향했던 제 고교 친구 전영진은 계엄군의 총탄에 쓰러졌습니다.
시민군이었던 또 다른 친구 김향득은 “집으로 가라”는 형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광주YWCA에 남았습니다.
끝내 시민군들과 함께 ‘굴비처럼 엮인 채’ 끌려갔고, 군 영창에서 받은 고문 후유증을 평생 안고 살다 지난해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제자들을 역사의 길로 이끈 당신의 가르침이 혹여 그들을 죽음의 문턱으로 밀어 넣은 것은 아닌지, 먼저 간 제자들의 이름을 되뇌이며 피눈물을 삼키셨을 스승님의 그 심정을 지금도 감히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그 가혹한 세월을 견디고도 선생님은 지금껏 우리에게 참스승으로 남아 계십니다.
그리고 때마다 제게 죽비 같은 가르침을 주십니다.
“불원천 불우인(不怨天 不尤人),
하늘을 원망하지 말고 사람을 탓하지 말라.”
감옥에 갇혀 있던 제자에게 보내주신 이 말씀이, 정치검찰과 검찰권력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던 제게는 구원이 되었습니다.
요즘 많은 분들께서 제 얼굴이 맑아졌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돌아보면 모두 스승님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해마다 스승의 날이면 박석무 선생님을 떠올리며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부디 오래오래 우리 곁에 계셔주시길 빕니다.
오늘 저녁, 전화 한 통 드려야겠습니다.
송영길 페북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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