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영 작가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현실세계에서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 있는 것조차 꺼리는 인물들이죠.
회사 비품을 훔치는 것은 예사고, 사람들을 협박하고 알고보니 살인까지 한 일이 있는 이지안.
삶이라는 것에 아무런 가치를 두지 않고, 그저 매일매일 술을 마시며 천천히 자신을 죽여가고 있는 호스트바의 마담이었던 알콜중독자 구씨.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상황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그저 나 여기 있어요. 나 여기 있어요 계속 떠들며 모두의 기분을 망쳐놓고 사람들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게 만드는 20년째 입봉작이 없는 민폐 그 자체 영화감독 황동만.
그리고 개인적으로 그의 서사가 몹시 궁금한 성실히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죽음만을 바라고 있는 듯한 황진만.
이 사람들의 주변에는 겉으로는 괜찮아 보이고 멀쩡해 보이지만 사실은 외로움과 무가치함에 잠식되어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아직까지는 괜찮지만 지금의 상태가 계속되면 앞 부류의 사람들과 어쩌면 크게 다르지 않게 마음이 망가져버릴 수도 있는 사람들.
저는 박해영 작가의 주인공들이 일방적으로 누가 누구를 구원하거나 치유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두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그래도 아직 자신을 지킬 힘이 있어서 앞의 부류 사람들을 돌아봐요.
누군가가 모욕을 당할 때, 오해를 받을 때, 더 이상 느린 자살을 향해서 살지는 말라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자신들도 자신들의 삶의 방향을 바꿀 또 다른 기회를 갖게 되요.
그리고 첫부류의 사람들은 결국에는 그 마음에 반응하고 그들의 변화가 또 두번째 사람들에게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는 힘을 줘요.
저는 박해영 작가의 작품들이 그래서 참 좋아요.
그 어떤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라도 -나는 오히려 나 스스로에게는 못해주지만 - 타인을 향해서 여전히 손을, 마음을 건낼 수 있다고. 우리 그래 보자고 말하는 것 같아요.
박해영 작가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저절로 앙드레 도텔의 '인생의 어떤 노래' 의 한 구절이 떠올라요.
90년대 중반에 현대문학에서 발간된 프랑스 6대 문학상 수상 작품집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에 뒷표지에 인생의 어떤 노래의 그 구절이 있고, 그것을 보다가 또 다시 책 전체를 읽게 되서 더 좋아요.
-살아야 했다구. 알아들었어? 물론, 너나 나나 도대체 어디에 쓸모가 있었겠니?
그래도 살아야 할 걸 그랬다구.
뭣 때문이냐구? 아무것 때문에도 아니지....
그냥 여기 있기 위해서라두.
파도처럼, 자갈처럼.
파도와 함께.
자갈들과 함께.
빛과 함께. 모든 것과 다 함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