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강사인데요. 애들이 잘 따르는 편이에요.
좀 꼰대 기질도 있는데(제 수업에선 예의 지켜야 하고 핸드폰 무음으로 바꿔서 내야 하고
지각 절대 안 되고 숙제 안 해 오는 거 누적되면 못 다니고 쫓겨나고
프린트물 낼 때 두 손으로 내야 하고 좀 그래요 ㅎ 꼰대같은가? 생각해 봤지만 나쁜 거 가르친다는 생각 안 들고
학생들이 노룩으로 저한테 한 손으로 띡 프린트 주는 거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아서
그때그때 고쳐 줍니다)
그래도 애들은 진심을 아는 건지(그게 아니고 성적을 올려 줘서 그런가?...) 잘 따르는 편이에요.
수업이 종료되고(졸업하고) 각기 갈 길 찾아 헤어진 후에도 학생들이 찾아오거나,
카톡으로 연락 오거나 하는 일이 종종 있어요.
스승의 날이 아니라 발렌타인 데이에 시커먼 남학생들이 우르르 와서(아무 생각 없이 그 날 온 거죠)
야 너희는 오늘같은 날 그렇게 갈 데가 없냐, 너희들끼리 만나는 것도 웃긴데 나 수업하는 데를 왜 와
이러고 저녁 먹으라고 돈 줘서 보낸 적도 있고요. ㅎㅎ
그런데 가끔 옆으로 다른 노선을 타는 애들이 좀 있어요... 아주 가끔이지만.
상담할 거 있다고 꼭 오밤중에 연락하는 녀석들.
시험 전날에야 새벽 두 시고 세 시고 질문 다 받아 주고 다들 정신없이 문제 풀고 그러지만
보통 때는 학생들과 개인적인 연락할 일이 거의 없거든요.
카톡은 늘 열어 두지만 주 내용은 질문, 대답
저 오늘 무슨무슨 사유로 지각합니다/ 결석합니다 하는 연락
숙제 중에 너만 틀렸던 그 문제 뭐뭐 다시 풀어서 내라/ 냈습니다 하는 연락
이런 게 다예요.
다른 노선을 탄다는 건, 개인적으로 친분을 쌓고 싶어하는 것 같은 애들을 말해요.
뭐, 여학생이면 상관없죠(저 여자). 어느 정도까지는 얘기 들어 주고 나이 많은 언니이자 인생 선배 노릇할 수 있어요.
하지만 남학생들의 경우, 어떤 오해도 받기 싫고 저는 깔끔한 사제관계를 추구하기 때문에 칼 차단하는데... 제가 바늘끝도 안 들어갈 것 같아 보이면
이 녀석들은 하나같이 패턴이 있어요, 약한 척을 하고 고민이 있다고 하고 선생님한테밖에 말할 데가 없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마음이 약해져서 들어 줬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니 패턴이 보이더란 말입니다. 아 이놈들 수법은 다 똑같구나. 그냥 어떻게든 내가 자기한테 대답을 하게 만들기 위해 쓰는 수법이구나!
몇 년 전에 어떤 녀석이 있었어요. 고딩.
얘는 학교에서 친구가 없다는 고민을 털어놨어요. 저는 이러이러하게 대처하는 게 좋겠다는 답 정도를 해 줬죠.
현장학습(소풍, 롯데월드) 가서 저한테 자기 사진을 보내더라고요?
이런 거 왜 보내... 싶었지만 곧바로 붙는 멘트. 저 혼자 있어요, 어떡하죠? (아 또 불쌍하잖아요? 저까지 읽씹, 즉 무시할 순 없죠.)
저는 '놀이공원에서 혼자 놀기 힘들면 담임선생님께 몸이 아파 먼저 가겠다고 말씀드리고 집에 가라'고 했죠.
하지만 열심히 거리를 유지하며 이렇게 답을 적절하게 해 준 결과...
이 애는 나중에,
같은 수업(저의 수업) 듣는 학생 중에, 학교도 다른 A가(남학생)
학교는 같은데 수업 중에 서로 말 한 마디 섞는 거 본 적도 없는 B가(여학생)
각각
자기 얘기를 뒤에서 하고 다닌다는 얘기를 들었다, 자기는 아는 형들을 데리고 가서 겁 좀 주고 따지려고 한다
(친구는 없다고 하면서 아는 형들은 누구 누구 많다고 하는, 좀 노는 겉모습의 아이였어요)
이런 얘기를 저에게 와르르 쏟아놓고는
제가
-내가 보기엔 그 애들이 그랬을 것 같지 않다(정말 그럴 애들도 아니고, 착하고,
사실은 공부하느라 바빠서 그렇게 잘 알지도 못하는 애의 뒷얘기 같은 걸 할 만큼 한가하지도 않고
솔직히 서로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어서, 정말 1g도 없어서라도, 뒷얘기를 했을 리가 없어요.
교실 문을 나가면 바로 잊어버리는 존재에 대해서 뒷얘기를 굳이 할 리가 없잖아요?)
-그리고 만약 그냥 넘길 수가 없다면 형들을 몰고 가서 겁을 주기 전에(이러면 학폭이 될 수도 있잖아?)
내가 이러이러한 얘길 들었는데 너 진짜 그런 얘길 한 적이 있냐고 물어보는 게 먼저 아닐까?
등의 얘기를 하자
자기 편을 들어 주지 않고 애들 편만 든다며, 선생님 정말 실망이고 어쩌고 저쩌고 난리난리를 친 후에 수업을 그만두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답니다. 나 참 어이가 없어서.
그런데 그걸로 끝이 아니고
그 후에 오밤중에 전화가 한 번 온 적이 있답니다. 밤 열한 시 반쯤?
안 받았죠. 왜 오밤중에 선생님한테 전화야.
그랬더니, 그 후에, 찾아왔어요! 수업하는데 밖에 와 있었고 저는 몰랐죠.
수업이 끝나고 애들 나가니까 건들건들 들어와서 자리에 턱 앉더니(이때 어찌나 놀랐는지)
아주~ 시비를 거는 말투와, 얼굴로, 저에게
-생각할수록 화가 나서 왔다
이런 말을 했어요!
그러고는 다시 앞서 그 얘기를 꺼내며 자기 편을 들지 않았고, 자기 말을 믿어 주지 않았고, 자기의 억울함이 가슴에 쌓였고...
이런 얘기를 계속 함.
저는 솔직히 수업 끝나고 밤 시간에 나 혼자 남은 교실에 갑자기 찾아온 거 때문에 좀 놀라고 무섭(?)기도 했지만
이 녀석의 앞뒤 안 맞는 중언부언 자기 위주 징징거림을 듣다 보니 점점 머리에 스팀이 오름...
-내가 했던 말은 학폭에서 너와 대상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고
내가 권한 대로 해서 너에게 나쁠 건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어떤 일을 앞에 두고 무조건 협박조로 가서 따지는 것보다, 앞뒤 상황을 먼저 알아보라는 게 왜 그 애들 편을 드는 거냐
선생님으로서는 할 수 있는 말 아니냐, 나로서는 가장 객관적인 입장을 취하려고 한 거다!
와다다다 말을 했더니
-하- 참
참나
하 씨
삐딱하게 앉아서 이러고 듣더니
-그러니까 나한테 하나도 안 미안하다는 거네요?
-쌤은 쌤 말이 다 맞다는 거네요?
-아아 나는 사과를 받아야 될 거 같아서 왔는데, 전화도 안 받더니, 얘기를 해도 소용도 없네요?
이러고
다시 올 일은 없을 거라고 하고는 갔어요. 한때는 쌤이 내 이상형이었는데 이젠 아니다 어쩌고저쩌고 하며.
아놔 이놈의 자식이 진짜
머리가 나쁜 줄은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가르쳐 봤으니), 선생님이 객관적으로 앞뒤가 매우 맞는 말을 하면,
그게 설사 자기 편을 안 들어 주는 말이라고 해도 아 그렇구나 하고 좀 알아듣고 수긍할 줄을 알아야지...
사과를 받아야겠다고? 이상형이 어쩌고 어째?
...
이게 몇 년 전인데 제가 오늘 다시 황당해진 이유는
좀 전에 또! 세상에 또 전화가 왔기 때문이에요.
밤 11시가 넘었는데 갑자기 벨이 울려서 놀라서 봤더니, 저 이름이 누구더라...? 내가 가르친 애 중에 저런 이름이 그때 걔 말고 또 있었나...? 하고 몇 초간 생각을 하게 만든
아주 오랜만에 보게 된 이름이에요. 얘 도대체 뭘까요?
저보고 여지를 줬네 어쩌고 그런 말은 하지 말아 주시길 바라요. 저는 제 처신과 충고에 추호도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보다 어리고 약한 미성년자인 고딩들을 대할 때, 학업 측면에서나 멘토/멘티 측면에서나
조금이라도 인생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언제나 그런 방향으로 생각하고 행동했어요. 항상 고민하고 칼같이 선을 지켰고요.
제가 그렇게 해도, 어떤 녀석들은 어떻게든 곁에 더 다가오고 싶어하고(성별 불문)
제가 강해 보일수록, 의지할 만해 보일수록, 자기에게 도움이 될수록, 정신적으로 나약한 애들은 더 그런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래서 지나치게 큰 영향은 끼치지 않으려고 더 조심하는 것도 있어요. 취약한 사람들은 쉽게 영향 받거든요. 또한 동시에 주변인에게서 많은 에너지와 자원을 끝없이 빨아들이면서 주변인을 말려죽일 수도 있는 게, 나약한 존재들이죠. 저는 저와 학생들을 모두 보호하려고 해 왔어요.
그런데... 제가 어떤 노력을 하거나 말거나
'나약한 남자애들'은 진짜 좀, 아... 오늘은 정말 솔직히 말하고 싶네요, 선생이고 뭐고 솔직히 말하고 싶어요
...짜증나는 존재예요! 이 못나고 못난 놈들아, 도대체 니네는 왜 그러니!
어디서 밤중에 전화질이야, 전화하지 마!
...꼭 할 말이 있었던 것인가 하는 생각은 이제 안 해 주렵니다.
카톡은 뒀다 뭐에 쓰고? 하고 찾아 보니, 제가 차단을 해 놨군요.
쓰다 보니 너무 길어졌네요. 제가 느끼는 이 답답함을 누군가 이해하실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글에 없는 걸 추측하고 악플 다는 사람이 여기에는 없길 소망해 보아요.
저는... 아직도 아이들에게 희망을 걸고 있지만
동시에,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인간에 대해 많이 절망하게 된 것도 사실이에요.
내가 아무리 애써도 안 되는 건 안 된다는 진실에 대하여. 직시하고 싶지 않지만 어쩌면 그것만이 불변의 진리가 아닌가 하는 회의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으려고 매일 마음을 고쳐먹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