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곧 50인데 이 친구랑은 대학교에서 만나 이십대 초반부터 친했어요.
아주 오래된 관계에요.
저는 낯가리고 주변에 사람이 없는데 반해서
이 친구는 언제나 사람들을 끌고 다니고, 말도 너무 재미있게 잘하는 스타일이고
게다가 멋쟁이로 잘 꾸미고 활동적이고 인싸 중에 인싸인 스타일이고요.
우리 둘다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웠어요.
둘다 흙수저. 아니 돌수저 집안인데 그마저도 화목하고 정상적인 집이 아니라 콩가루 집안에서 아들노릇하는 딸 입장인 것도 같았고요.
그렇게 긴 시간을 친하게 지냈어요. 만나는 건 일년에 서너번 만날때도 있고,
아예 한 해는 못보기도 하고
연락은 가끔. 그렇지만 가족보다 진하고 가까운 사이었죠
친구가 10년전에 저한테 500만원 정도 빌려줄 수 있냐고 어렵게 말을 꺼내더라고요.
그때는 얘가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었어요.
남편도 저랑 이 친구랑 엄청 친한걸 알고 있어서 그냥 친구한테 주는 마음으로 빌려주라고 하더라고요.
너 형편되면 갚아. 하고 줬어요 그땐. 받을 마음도 없었고요.
7~8년전쯤엔 친구가 청약으로 어떤 아파트가 당첨이 되었다 해서 정말 뛸듯이 기뻐해줬죠.
진짜 축하해줬고요.
그러고 얼마나 지났나? 친구가 하는 말이 돈이 부족해서 이 아파트 포기해야할 수도 있겠다 라는 말을 하길래 그런게 어딨냐고 제가 깜짝 놀랬죠.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요.
자기가 신용이 안좋아서 대출이 안나오는데 너가 나를 돈을 잠시만 융통해주면 이 아파트 전세 주고 전세금으로 갚겠다 이러더라고요,
그래서 아. 그런 상황이냐.
근데 제가 대출을 받으려했더니 제가 월급이 최저임금수준이라, 제 연봉 이상은 1금융권에서 대출이 안나오더라고요. 재산도 없으니 담보대출도 안되고요. 근데 2금융권은 되더라고요. 남편한테는 말 안했죠.
이자가 13%짜리 비싼 대출인데 제가 5천만원을 빌려줬어요. 왜냐면 곧 받을거니까. 친구가 이자까지 다 준다고 했으니. 저는 그때 별 생각이 없었어요.
그리고 그렇게 돈 빌려주고, 서로간 또 바쁘니까 한동안 연락을 안했죠.
전 독촉하기 싫어 그냥 있었어요. 그러고 그 대출을 계속 갚고 있었죠.
전 살면서 대출을 처음 받아봐서 1금융권, 2금융권, 이자 이런것도 잘 몰랐어요.
근데 제가 돈을 매달 갚으면서 보니까 이게 진짜 장난 아니더라고요.
조금이라도 이자를 줄이기 위해 저는 적금도 깨고, 청약도 깼죠.
제2금융권에서 겨우 1금융권으로 옮겨왔어요. 다행히 신용도도 많이 올라갔어요.
대출 총액도 줄고, 꾸준히 갚고 있고, 1금융권으로 옮겨와서요.
근데 그러고 1년도 더 지나서
남편이 저한테 왜 청약을 깼냐고 하더라고요? 모를 줄 알았는데 식겁했어요.
남편이 하긴 뭐 우리는 서울도 아니고. 청약 될 일도 없는데 뭐~ 하더라고요.
남편이 저대신 제홈텍스에 들어가서 뭘 해주는데 거기에 그게 나오나보죠?
그때부터 저는 심장이 벌렁벌렁
그래서 제가 친구한테 전화를 걸었어요.
남편이 의심할 거 같아서. 게다가 제가 엄청나게 돈을 아끼고 하는 상황이라 언젠간 걸릴 거 같아서 빨리 받아야겠다 싶더라고요.
전세 들어왔냐 물었더니 그냥 전세 안주고 부모님 우선 들어와 살라고 해서 부모님이 살고 계신다라고요.
언제부터?? 몇달 되었대요.
그러니까 애초에 전세들여서 저한테 돈 줄 생각은 없었던 걸까요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만났더니
친구네 아버지가 돌아가실 정도로 건강이 안좋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친구랑 친했기에 그 부모님도 제가 많이 본 사이니까 이해는 했고요.
집을 전세가 아니라 아예 매매로 내놓고 대출 갚고 , 아버지 고향으로 일단 이사갈거라고.
그 동안 일을 못하니 생활비 좀 빌려달라 . 울면서 이야기하더라고요.
그 집은 시세보다 싸게 내놓을거라 3개월안에 팔릴거라고
2천만원을 또 대출받아 빌려줬어요.
저 진짜 멍청한 거 맞아요.
그렇게 또 저는 친구를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면서 더 빌려준거죠.
한편으로는 3개월 안에 이전 돈이랑 이번 돈이랑 한꺼번에 받겠구나 생각하고 아휴. 후련하다. 생각하고요.
그때 전세 들어올거는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기약없는 약속이었지만
이번에는 바로 시세보다 싸게 내놓은다고 하니 해결되겠구나 . 후련하겠다 생각하면서요,.
뭐든 친구일이 잘 풀렸으면 좋겠다 하고 살고 있다가 그 3개월이 지나갈 무렵에 전화를 해봤어요.
집을 아직 안내놨데요. 지금 내놓으면 너무 손해가 크다고요.
누가 그러는데 여기가 나중에 옆에 뭐도 생기도 뭐도 생기고 한다더라, 그때팔면 훨씬 많이 받는다고.
그리고 여기 아파트 누구도 몇억에 팔았대! 하면서 여기가 그만큼 가치가 있는 데라고요
근데 그 아파트는 서울도 아니고 도시도 아니고.
옛날에는 근방에 새아파트가 없어서 인기가 있었을 뿐이지 그런 가치가 있는 곳도 아니거니와
시세가 100억이든 천억이든간에 사려는 사람이 없어요.
죄다 내놓은 매물 뿐이더라고요.
아버지 아프셔서 아버지 고향으로 간다메? 했더니 많이 좋아졌고, 또 거기는 오히려 병원다니기 불편해서 여기 계실거라고.
그때부터 제가 이게 뭔가 잘못됐구나 느낀거죠.
야. 내가 지금 이렇게 이 돈때문에 고통받고 있는데 넌 그게 안느껴지냐고 했더니
오히려 저한테 서운해하면서 자기 상황이 지금 이런데... 친구끼리 돈때문에 참.. 어쩌고 하더라고요?
마치 자기가 참고 있다는 양 이야기를 해요.
그러면서 걔가 한숨을 쉬더니 자기가 사람을 잘못 본거 같다며 "빌린 돈하고 이자하고 계산해서 보내라 "하고 전화도 안받아요.
그래서 문자로 "이자는 필요없고 원금 5천만 줘라" 했더니
"내가 이 아파트 팔리면 너한테 바로 1억줄게". 이렇게 답장이 오더라고요.
그때 알았죠.
아.. 얘는 내 돈 갚을 생각이 없구나.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1억줄게! 라는게 진지함이 하나도 없잖아요.
그리고 제가 전화를 잘 안받을때가 많거든요. 그걸 가지고 얘기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집팔리면 바로 연락할테니 그때는 전화 꼭 바로 받아" 이렇게 왔더라고요?
제가 받은 충격은 한번에 꽝 하고 오는 충격이 아니고요.
연속으로 계속 오더라고요.
어떻게 나랑 한몸같고 가족같던 애가 나한테 이럴수가 있을까.
어떻게 나에게 이렇게 고통을 줄 수 있을까.
진짜 그게 너무 충격적이었고요.
왜냐면 저도 형편이 좋지 않아 힘들다는 걸 얘가 알고 있어요.
그동안 내 이야기에 공감하며 오히려 나보다 더 눈물을 글썽거리던 그런 모습은 뭐지? 대체?
얼마나 제가 스트레스를 받았던지.
어느날 제가 운전을 하는 중에 갑자기 뭐가 이상한 기분이 쎄하게 들면서요.
지금 차를 운전하고 있는게 내가 맞나?
내가 지금 내 집으로 가는건가? 내 집은 또 어디지? 모든 것이 다 낯선 기분이 들더라고요.
집으로 우선 가야겠다. 이성의 끈을 붙잡고 집에 갔는데도 모든게 휑하고 이상하고 낯선거에요.
그 기분이 몇시간을 가더라고요.
자고일어나니 나아졌지만 그 기분이 지금도 생생하게 느껴져요.
정신과에서 진료받았더니 혹시 환청은 안들리냐고 (헐...)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면 일시적으로 그런 현상이 올 수 있다네요.
그러다가 A라는 친구한테 연락이 왔어요.
원래는 A도 저랑 이 친구랑 다같이 친구였었고요. 서로 성인되서 먹고살기 바쁘니 연락은 안하고 살지만 누구 결혼했다, 돌잔치다 할때 몇번 얼굴보고 했죠.
몇년만에 A가 전화와서 저한테
이 친구 전화번호 바뀌었냐고 하는거에요.
그러면서 전화를 안받는다고.
사실은 자기가 돈을 빌려줬는데 (A한테는 이자는 계속 줬나보더라고요)
원금 갚기로 했는데 가타부타 이야기도 안하고 전화를 안받는다고요.
저 너무 놀라서 너한테도 빌렸냐고 하니
자기는 몇번이나 빌려줬었고 누구한테도 빌렸다.
그러면서 저도 제 사정이야기하고 하다가 이야기 봇물이 터진거죠.
제가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어요.
충격적인 것도 있었고요.
왜 나한테는 아무도 이 얘길 안해줬냐 하니 저랑 이 친구가 너무 친해서 다 아는 줄 알았대요.
그리고 그 아파트도 안팔리는 이유가 여기저기에 다 잡혀있어서 안팔리는 거라네요.
너나 나나 원금이나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자기가 사기로 고소할려고 알아봤는데 그동안 이자를 계속 자기한테 줬기 때문에 그건 해당이 안되네 어쩌네 해요
또 충격이었죠.
제가 이 친구하고 그동안 보낸 세월에서 놓쳤던 것들
친구가 카드값을 못 막아서 돌려막기 했던거. 돈이 너무 없어서 아는 선배한테 빌렸다가 못 갚게 되어 인연 끊긴 얘기,
이 친구가 대학때 학생회에서도 있었는데 거기 공금 야금야금 조금씩 횡령했던 거. 전 이런 것들이 전부 친구가 너무 경제적으로 힘들고, 가정에서 가장 노릇하느라 그런걸로 이해한거죠 20대 초반. 얘가 너무 힘들었을때 아주 일시적인 거였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에피소드가 뒤늦게 하나하나 스물스물 기억속에서 올라오는거에요.
그 뒤로는 성인되서 돈도 나름 잘 벌고 멋있었거든요.
아... 그때 걔가..
아.. 그게 그거였구나. 그런 애였구나.
얘는 남의 돈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는 애였구나.
왜 난 몰랐지? 왜 그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지?
제가 그 동안 걔한테 돈 빌려줄 여유가 없어서 걔랑 사이가 유지되었던 것 같아요.
제가 돈이 많았으면 애초에 20대초반에 돈 떼었겠죠.
멍청한 저에 대한 분노가 또 막 치밀어 오르고요.
갑자기 걔가 너무 미워서 저 혼자 있다가 걔 생각이 나면 입에서 막 쌍욕이 나오는거에요.
특히요.
걔가 했던 말 중에
한숨쉬듯 짜증난다는 듯
하.... 진짜 친구사이에 이러는거.. 참..
이게 너무 기가 찬거죠. 끝까지 자기 잘못은 전혀 보이질 않고 오히려 저를 원망하는 듯한.
돈도 돈이고요.
진짜 앞으로 그 돈 갚을 생각하면 아득하지만 근데 누구한테 진짜 큰 사기를 당할수도 있는거고
멍청한 제가 어디 코인에 넣었다가 다 털렸을수도 있는거고
그건 억지로 그냥 인생공부라고 치고 있어요.
근데 심적인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요.
너무 무기력하고요. 피곤하고요. 집에 설거지가 산더미에요
아예 그 돈 떼었다! 생각하고 다시 시작하고 싶은데 열심히 출근해서 일하다가도
이 돈벌어서 돈이 모으는게 아니라 갚아야지 생각하니 일도 하기 싫고요.
집에서도 가족들한테 미안하고 그러면서도 밥도 차리기 싫어요.
남편이 최근에 주식으로 많이 잃었다며 제 눈치 보는데
왠걸. 저는 오히려 다행이더라고요. 남편도 나한테 미안한게 생겼으니.
이 우울함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제가 집에서 자기전에 앵무새, 강아지, 고양이 유튜브보는게 낙이었는데 이젠 아무것도 눈에 안들어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