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분 진미채 이야기 보면서
저도 주식으로 물린 퍼런창에 멍든 마음을 달래고자
진미채를 빨갛게 무쳤습니다.
고추장 크게 한숟가락, 같은 비율로 설탕과 간장은 반숟가락씩,
고추가루 찹찹, 깨소금과 참기름은 뺐습니다.
(정확한 레시피 있으면 키톡으로 가야하고 여기는 자게니까요)
맛보다 보니 어느새 밥이 땡깁니다.
밥공기 냅두고 국사발에 밥을 크게 한주걱 뜹니다.
이건 분명 무의식입니다. 의식은 그럴리 없으니까요.
남편은 취미생활하느라 바쁘고, 아이들은 다 컸고, 저도 하던 일 멈추고 나니
거울속 누군가 있는데 머리가 반백발이네요.
염색 비용도 그렇고
무엇보다 하고나면 몸살이 나서 그냥 저냥 내비두고 삽니다.
만나는 사람들은 조심스레, 혹은 예의없게, 아주 무례하게 물어봅니다.
왜 염색을 안하냐, 니가 강장관이냐, 염색을 안하려면 피부과라도 가라~
저는 왜 진미채를 씹으며 흰머리에 대해 생각할까요?
제 의식의 흐름은 AI도 놀랄 알고리즘을 개척합니다.
90년대 학번인 저는 철학박사 강유원교수님의 강의를 들었더랬습니다.
그때는 교수님이 아직 대학에서 강의를 할때였는데
거친외모(꽁지머리와 관상학적으로 의미있는 얼굴)와
더 거침없는 동서양철학자를 꿰는 입담
그와중에 졸고 있는 아이를 깨우지 않으면서 깨우는 강의능력까지...
저는 시골에서 갓 상경한 덕선이 스타일이었는데,
시간보다 일찍오시는 교수님과
전시간 수업을 제낀터라 시간이 널널했던 제가 강의실에서 떡하니 마주하게 된겁니다.
"자네는 칸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자네'가 이인용 호칭인지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그리고 '칸트'도 뭐, 대학신입생이 알았겠나요?
"잘 모르겠는데요,,,,,"
그때 강유원교수님의 질문은 이어집니다.
"칸트를 모를수 있는데, 내가 왜 칸트에 대해서 물어본다고 생각하나?"
요즘 MZ 같았으면 맑눈광으로 고개짓 답했겠지만
저는 덕선이 캐릭터였으니까요.
"칸트는 모르고 칸쵸는 압니다"
그렇게 첫강의부터 제대로 눈도장을 찍혀 한학기 내내 질문공세에 시달렸고
덕분에 아주 의미있는(!!!!) 철학적 그라운드에서 난타를 당합니다.
중간고사는 오픈북, 오픈도어 였습니다.
고딩때까지만해도, 달달달 외워서 시험보다가
대학에서 '오픈북'이라니. 그것도 '오픈도어'???
공중전화로 전화걸던 시절에 스마트폰 검색찬스가 없으니
두시간 안에 시험지를 앞뒤로 채워오라는 말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범생들은 시험지를 들고 강의실을 나갑니다.
쟤들이 왜 화장실 가는데 시험지를 들고가지? 했더니
도서관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한두명이 나가는걸 보고 뒤늦게 깨달은 동기들도 주섬주섬 챙겨 나갑니다.
(강의실에서 중앙도서관까지는 거리가 꽤 먼데도 말이죠)
저는 쟤들이 왜 저러나? 가는 곳이 도서관이라는 곳을 한참뒤에 깨달은뒤
어쩌다보니 저 혼자 남았습니다.
또 심심해진 교수님께서 제게 말을 겁니다.
"자네는 왜 안나가나?"
이미 발빠른 애들은 도서관에 도착했을테고,
책을 찾았을테고,
늦은 애들은 서가를 서성거리겠구나 싶어서,,, 라고 얘기하고 싶었으나
철학수업이니 만큼
철학적인 답이 튀어나왔습니다.
"답은 제 안에 있으니까요"
하지만 속마음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문제조차 이해하지 못했습니다(지금도 문제는 뭐였는지 기억이.... )
그러니 나가봤자 뭔소용이었겠어요?
기말고사때도 오픈북, 오픈도어였지만
그때는 중앙도서관으로 달려가는 동기는 거의 없었습니다.
한학기 등록금이 아깝지 않았던 수업이었습니다.
그렇게 흘러흘러 교수님도 대학에서의 강의를 그만두시고
이런저런 책을 쓰고
제가 아는 '박사'같지 않은,
가장 '박사'다운 학자로 기억에 남았습니다.
아! 다시 정신줄을 흰머리에 붙들어 매보겠습니다.
어느날 수업시간에 당신의 지도교수님 이야기를 꺼냅니다.
지도교수님은 강유원교수님을 '강군'이라고 부르셨다는군요.
태생적으로 곱슬머리에 대해 신세한탄을 했더니
그분의 지도교수님은
"강군,
나는 자네의 헤어스타일에는 관심이 없네,
자네의 머리속에 관심이 있지"
저는 한번도 만난적이 없는 그분의 지도교수님이 궁금해졌습니다.
궁금해지는 것,
궁금해하는 것,
저는 그게 철학인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자,
다시 진미채로 돌아옵니다.
주식은 파래도,
진미채를 간장양념으로 고추장양념으로 승화시키는 82의 해학이 좋습니다.
전쟁이 나고, 기름값이 오르고, 주가는 떨어져도
흰머리는 소복소복 올라오고
밥때는 꾸역꾸역 돌아오는 세상.
AI가 대체할수 없는 영역이
'유머'라고 하더군요.
진미채 하나로
시퍼런 세상을
짭쪼롬달달매콤하게
밥한대접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