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60조원의 이자잔치, 그리고 11조원의 파산자들

60조 원의 이자 잔치, 그리고 11조 원의 파산자들: 우리는 왜 '진짜 도둑'에게 분노하지 않는가

 

방금 전 발표된 2025년 국내 은행들의 영업실적 기사를 보며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지난해 국내 은행들이 거둬들인 당기순이익이 24조 1,000억 원, 그중 이자이익만 무려 60조 4,000억 원에 달한다. 역대 최고치를 또 갈아치웠다.

이 어마어마한 숫자를 보며 누군가는 "은행들이 경영 혁신을 했구나", "장사를 참 잘했구나"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경제의 이면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 막대한 수익은 그들의 '실력'이 아니라 국가가 허락한 '독과점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기사의 세부 지표를 냉정하게 뜯어보자. 은행들이 예금과 대출의 금리 차이를 나타내는 순이자마진(NIM)은 오히려 1.57%에서 1.51%로 떨어졌다. 이문은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이자 이익이 1조 1,000억 원이나 늘어난 이유는 단 하나, 대출 규모 자체가 3,442조 원으로 폭증했기 때문이다. 즉, 은행들은 무슨 대단한 혁신적인 금융 기법을 발명한 것이 아니라, 그저 국가의 보호 아래 쳐놓은 거대한 금융 인프라 위에서 빚의 규모가 커지는 것에 비례해 가만히 앉아 '통행료'를 거둬들인 것에 불과하다.

 

나는 회생·파산 변호사로서 빚에 짓눌려 숨을 헐떡이는 사람들을 만난다. 통계를 보면, 한 해 개인파산 및 회생 신청자들의 총 채무를 다 합쳐도 추산 11조 원 정도이다. 은행이 한 해 거둬들이는 이자 수익의 6분의 1도 안 되는 미미한 규모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어쩌다 한계에 부딪혀 파산을 선택한 이들을 향해 "남의 돈을 떼어먹은 사기꾼", "성실하게 빚 갚는 사람만 바보로 만드는 파렴치한"이라며 가혹하게 손가락질한다. 정치권에서 빚 탕감 정책이라도 나올라치면 "내 피 같은 세금으로 왜 도박꾼들을 살려주냐"며 댓글창이 폭발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번 진지하게 되물어보자. 가만히 앉아 60조 원을 거둬들이는 은행의 저 거대한 이윤은 과연 그토록 정당하고 생산적인가? 

은행이 우리에게 받아 가는 '이자'의 정체는 단순한 '돈을 빌려준 대가'나 '기다림에 대한 보상'이 아니다. 그 이자 속에는 대출자가 돈을 갚지 못할 확률, 사업에 실패할 확률을 아주 정교하게 계산한 '위험 프리미엄(Risk Premium)'이 듬뿍 포함되어 있다. 다시 말해, 은행은 이미 매달 당신이 파산할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비해 '선불 보험료'를 뜯어가며 그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높은 수익(High Return)은 필연적으로 높은 위험(High Risk)을 감수한 대가여야 한다. 은행은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약속의 대가로 막대한 이자를 챙겼다. 그런데 정작 누군가 사업에 실패해 파산이라는 '위험'이 현실화되면, 은행은 철저하게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며 채무자 개인에게 모든 도덕적 비난을 전가한다. 돈을 빌려줄 때는 위험할 수 있으니 돈을 더 받아간다고 해놓고, 막상 그 위험이 현실화되면 "돈을 갚는 것은 인간의 도리"라며 고대 로마 시대의 채권자처럼 돌변하는 것이다. 몇 번 칼럼으로 쓴 적 있는, 보이스피싱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내용과도 일맥상통한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이토록 엄청난 순이익을 거두면서도, 은행이 짊어져야 할 마땅한 사회적·인프라적 책임은 철저히 방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인 것이 보안 투자다. 글로벌 금융의 심장인 미국의 JP모건 체이스를 보자. 그들은 2026년까지 기술 예산을 무려 198억 달러(우리 돈 약 27조 원) 규모로 확대하며, 이를 클라우드와 사이버 보안, AI 인프라 구축 등에 쏟아붓고 있다. 시스템의 안전이 곧 금융업의 본질임을 알기에 조 단위의 돈을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것이다.

 

반면, 60조 원의 이자 잔치를 벌이는 대한민국 시중은행들은 어떨까? 당기순이익 대비 정보보호 예산 비중을 보면 참담하다. 신한은행 0.9%, KB국민은행 1.2%, 하나은행 1.4%, 우리은행 1.5% 등 1%대 안팎에 불과하다. 절대 금액으로 봐도 금융권 정보보호 투자 1위라는 우리은행의 1년 예산이 고작 444억 원 수준이다. 오히려 덩치가 훨씬 작은 인터넷 은행 토스뱅크가 순이익의 26.2%를 보안에 투자한다.

 

은행은 비대면 금융, 디지털 전환이라는 명분으로 인건비를 줄여 이익을 극대화하면서도, 정작 국민의 금융 자산을 지키는 필수적인 방파제 구축은 '비용'으로 치부하며 투자를 꺼린다. 사고가 터지면 대형 로펌을 선임해 "고객 과실"이라며 소송으로 방어하는 것이 보안 인프라를 튼튼하게 구축하는 것보다 훨씬 싸게 먹히기 때문이다. 이익은 철저히 사유화하고, 시스템의 위험과 사고의 책임은 고스란히 금융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것. 이것이 60조 원 이자 수익의 실체다. 과연 누가 진짜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저지르고 있는가.

 

경제학의 거장 조셉 슘페터(Joseph Schumpeter)는 자본주의를 진보시키는 핵심 엔진을 '기업가의 혁신'으로 보았다. 그리고 기업가가 기존의 낡은 질서를 깨고 '새로운 결합'을 시도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빚(Credit)'을 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혁신가에게 빚이란,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가치를 담보로 현재의 자원을 끌어오는 '타임머신'과 같다.

 

이 거대한 혁신의 사이클에서 은행가(Banker)의 역할은 무엇인가? 슘페터는 은행가를 혁신가의 비전을 심사하고 사회의 자원을 쓸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는 '수문장'에 비유했다. 은행 스스로는 어떠한 혁신도 만들어낼 수 없으며, 사회를 단 한 발짝도 발전시킬 수 없다. 오직 도전하는 기업가에게 자금을 혈관처럼 공급할 때만 은행은 존재 가치를 갖는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의 은행들은 어떠한가? 실패의 위험을 감수하는 진짜 혁신 기업가들에게는 철저히 문을 닫아걸고, 절대 망하지 않을 아파트 담보대출과 고신용자들의 신용대출에만 매달려 '안전한 이자 놀이'만 하고 있다. 진정한 의미의 리스크(Risk)는 회피한 채, 덩치를 키워 서민들의 빚더미 위에서 거머리처럼 피를 빨아먹는 지대추구(Rent-seeking) 집단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한국 경제는 지금 서서히 끓는 냄비 속의 개구리처럼 식어가고 있다. 실패를 가혹하게 처벌하여 아무도 도전하지 않는 사회, 그러면서 안전한 독과점 구조에 앉아 수십조 원의 이자만 챙기는 거대 자본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사회. 이 기형적인 구조를 깨지 않으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은행이 독점적 지위를 통해 거둬들인 60조 원의 비생산적인 이자 이익은 정당하지 않다. 이 거대한 부는 다시금 금융 소비자들에게 금리 인하의 형태로 정당하게 돌려주어야 한다. 나아가, 그 자본은 안전한 금고 속에 웅크리고 있을 것이 아니라, 실패의 공포를 무릅쓰고 세상에 없던 가치를 창출하려는 '혁신 기업가'들의 손으로 흘러 들어가야 한다.

 

우리는 이제 시선을 교정해야 한다. 생존의 벼랑 끝에 몰려 11조 원의 빚을 탕감받는 파산 채무자들을 향한 가혹한 손가락질을 대신 우리의 분노가 진정으로 향해야 할 곳은, 위험은 책임지지 않으면서 국민의 빚을 담보로 60조 원의 잔치를 벌이는 은행의 비대한 독과점 구조다. 이 낡은 구조를 해체하고 자본의 물길을 혁신으로 돌려놓을 때, 비로소 빈사 상태에 빠진 우리 경제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할 것이다.

 

[ 박기태 회생.파산전문변호사 페북 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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