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모두 잊을 수 있을까

시어머니가 쓰러져 응급실을 거쳐 중환자실로 가셨단 연락이 왔다.

그 날은 새해를 맞아 나에겐 아주 중요한 날이었다. 

오래전부터 기획하고 며칠 전부터 밤새 준비했다.

그 동안 고생한 노력이 이제 성과로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하는 올해는 나에게 중요했고 기대되는 새해 첫 일의 시작이었다. 

 

행사가 시작되기 2시간 전 시아주버님께서 남편이 연락이 되질 않느다며 시어머니의 소식을 알려주었다. 

뭔가 현실적이지 않고 믿기지 않는 상황이며 당장 지금 해야할 일들이 손에 잡히지 않고 집중하기 어려웠다.

몸은 움직이고 있었지만 마지막 준비단계로 남겨 두었던 일들이 헛바퀴만 돌지 제자리다. 정해진 시간은 다가오는데...

경황이없어 여기저기 민폐를 끼치며 도움을 구한 뒤 어찌어찌 일이 모두 마무리 되고 정신을 차려보니 늦은 한밤중이었다. 

 

남편은 뇌출혈로 의식 없이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계신 어머니께  면회도 불가한 상태라 전하며 나에게는 어찌할 수 없으니 내 일에 집중하라 했다. 

 

시어머니, 그 분의 존재는 나에게 뭐라 한 마디로 정의 내리기 어렵다.

 

사고나기 20여일 전에 어머니께서 쓰신  장문의 편지가 우체국 소인이 찍힌 봉투에 담겨 나에게 전해졌다. 

 

내가 일에서 입지가 커지는게 영 못마땅하신건지 

너가 언제까지 승승장구할것 같으냐 남편을 우습게 보면 너가 우스워진다 남편을 하늘같이 모셔야 한다..는 내용의 2장 가득 친필로 쓰신 편지였다. 

 

남편도 이런 어머니를 잘안다. 

의미없는 말씀이니 개의치 말라는 평소 남편의 말에 나도 애써 못들은 척 하고 넘겼지만 이렇게 편지글을 받으니 적잖게 타격이 왔다. 

내가 그렇게 질못하고 있었던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건 아니다.. 그냥 난 열심히 살아온 죄 밖에는 잘못이 없었고 내가 어머니께 이렇게 원망듣는건 무척 서운 한 상황이다.  

 

이런 감정으로 하루하루 지나던 중  어머니 께서 쓰러지신거였다..

그 날이후 어머니에 대한 원망과 혹은 죄책감이 뒤엉킨 채 정신이 분열되는 듯한 일주일을 보냈다. 

 

한여성으로 해방전에 태어나 배고프고 혼란한 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살아오신 여정이 무척 혼란스러울거라 생각하면 안타깝기 끝이 없었지만 , 그렇다고 어머니와 사고가 다른 나를 불편해하고  마냥 못마땅해 하신건 억울하다 못해 마지막엔 나도 어머니 싫은 티를 내게되었다. 

 

언젠가 어머니께 답답한 내 속내를 전하고 싶기도 하던 차에 어머니 편지가 도착했고 난 그 편지 내용에 대해 어머니께 전화해서 그 동안 답답하고 시대에 맞지 않는 말씀들은 아니라고 어렵게 말씀드렸다.. 뭐 별 내용은 없었고 남편을 하늘같이 모시라는 부탁에 대해 제가 더 바쁜데 자기먹은 설겆이 정도는 할수있지 않냐는 정도였는데 여전히 어머니는 왜 남편에게 설거지를 시켜야하냐며 화내신... 그정도의 대화였다 어이없게도...  

이 통화가 어머니와 마지막이였고 그 후 3주후에 어머니께서 쓰러지신거였다.

 

30년전 처음 어머니를 뵜을 때 왜 난 사랑 받고 샆어했는지.. 어머니와 관계에서 내가 사랑받는 며느리가 못되면 내 인생이 실패한 것 같은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그냥 내가 어머니를 사랑하려 했더라면 문제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어머니에게 사랑 받기란 참으로 어려웠다. 

비교대상은 없었지만 극진한 아들 사랑에 나와 아이들이 뒷전인게 아쉬웠다기 보다  그냥 며느리인 나에게는 애써 구지 막대하고 하대해야 어머니와 시댁의 권위가 선다고 생각하시는 듯한 모든 행동과 말씀이 참 못마땅했다.  친근감의 표시라고 받아들이기도 힘든 무수히 많은 일들이 시댁에 가면 일어났었다.

 

이제와서 하나하나 말하기엔 사소하고 유치한 일들인데 ...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던 나의 무대응도 어머니는 며느리인 내가 어머니를 무시한다고 생각하셨다고 오늘 시누이가 전했다... 

 

사실 그랬을 수도 있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바라신 며느리를 기를 죽여 휘어집아라? 는 어이없는 말씀은 이미 지식인으로 자라난 아들에게는 부끄러운 요구인지라 아들에게도 며느리에게도 어불성설이었을텐데 30년 전부터 쓰러지기 직전까지 같은 입장이셨으니... 뭐라 할 말이 없고 답답한 하기만하다. 

 

얼마전 부터 교회도 나가시고 세상에 대한 시야도 생기셨을법 한데 여전히 그런시각으로 딸 하나를 제외한 모든 자식들과 불편한 관계를 고수하신 이유가 

뭐였을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며칠전 고비를 넘기시고 어제부터 안정기에 들어선것 같다고 남편 누나인 시누이가 말한다 . 같은 병실에서 몇달 혹은 1년 넘게 계신 옆의 환자분들 처럼 어머니도 길게 가실것 같다고한다..

 

어머니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계실까..

나를 여전히 미워하고 계실까...

병실에 누워계신 어머니와 눈이 마주쳤을 때 

뭔가 아시는것 같기도 아닌것 같기도 하다.

 

우리 인생이 그런것 같기도 그럴것 같기도 하다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 이었을 수도 있는것 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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