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봤을 때는 그냥 지나쳤는데 오늘은 댓글 달아 드릴까...? 하는 중에 지우셨네요.
지난 번에 달린 댓글을 봤는데 댓글들이 별로 친절하진 않았어요. 그렇다고 나쁜 건 아니었는데
올리신 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잘 모르겠다...는 내용이 댓글의 주 내용이었죠?
지난 번 올린 것에서 달라진 게 없는, 즉 수정한 것도 아닌 걸 다시 올리셔서 왜지? 궁금했고요.
사실은 저도 읽어보고 '하려는 말이 뭐지?' 생각이 들기는 해서, 조금 다듬을 수 있는 길을 알려 드릴까 싶기도 해요.
일상의 끄적임을 낙서가 아닌 시로 만들고 싶다면 '내가 이것으로 하려는 말이 뭘까'를 조금만 더 생각해 보시면 좋겠어요.
(꼭 하려는 말이 있다기보다는) 한 장면을 묘사하려고 한 거다, 하는 대댓글을 다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래도, 그 장면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시로 포착하고 싶었을 땐, 이유가 있을 테니까요.
그걸 꼭 줄줄 늘어놓지 않더라도(시는 오히려 함축을 지향하니까 그 반대라고 할 수 있죠) 읽었을 때 은은하게 그 뜻이 느껴져야 해요.
자녀의 먼지 묻은 트레이닝복에서 강아지처럼 뛰어놀았을 사춘기의 무해한 시간을 읽었다든가
낡고 닳은 남편의 옷에서는 고된 일상과 책임감을 읽었다든가.
그리고 빨래 바구니 맨 밑에 깔린 레이스 손수건으로는, 존재감은 작지만 그래도 내가 여기 있어서 이 가족들을 떠받치고 있지... 하는 주부의 고운 손길을 나타내고 싶었다든가.
하고 싶었던 얘기가 있었겠죠, 그 장면을 포착한 사람의 마음 속에는.
그런데 쓰신 것으로만 보면 그냥 물건의 나열이에요.
위에 제가 쓴 건, 혹시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건가? 하고 저 혼자 생각해 본 거지 시에는 그런 느낌이 별로 없었어요.
파란 하늘
파란 파도
쏴아쏴아 소리
여기, 양양
이런 식으로 나열만 해서는 시가 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단순히 사물을 묘사하더라도, 좀더 생각하고, 노골적이지 않으면서도 내가 그 사물을 보고 떠올린 것을 담을 그릇을 만들어야 하는데, 단어/단어/단어를 끊어서 아래로 늘어뜨렸다고 해서 그게 되는 건 아니죠.
엊그제 쓰신 글에서는 시 쓰기 시작한 지 보름 남짓 되었다 하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런 초보자가 처음부터 아주 잘 쓸 수는 없을 테니까, 한 가지 팁을 드리면
-이렇게 묘사하는 식으로 쓰는 것도 좋아요.
-하지만, 그렇게 쓰고 싶다면 맨 끝에 정돈하는 시구를 하나 만들어 붙여 줘 보세요.
예를 들어 그 빨래 바구니 시의 말미에
'저마다 살아낸 다른 하루가
한 바구니에 담겨 햇살을 받고 있다'
라든가...
'아빠 내가 한 골 넣었어!
먼지에 뒹군 막내의 체육복
소매 끝이 닳아빠진 남편의 윗옷이
체육복을 폭닥 감싸안고 있다'
이런 걸 써서 마무리했으면 좀더 정돈된 느낌, 그리고 '아, 하고 싶은 말이 이런 거구나' 하는 인상을 주며
시를 마칠 수 있었겠죠.
위의 '체육복을 폭닥 감싸안고 있다' 뒤에
'어디선가
웃음소리 들린 듯 만 듯'
이런 걸 붙여도 좋을 거고요. 어떤 선생님은 '그거 사족 같아요, 안 붙이는 게 좋겠어요~.' 할 수도 있고요. ㅎㅎ
즉, 눈에 보이는 것을/장면을/물건을
묘사하며 시를 써 보려는 것은, 뭐 좋다, 그러나 시인의 정서를 담은 마무리 문장을 따로 생각해 보시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나아가서, 묘사하며 시 쓰는 것에 익숙해지면 그 다음엔 시를 좀더 발전시켜 보세요.
나의 생각이나 감정을 담는 거예요. 최대한 간결하게.
시골에서 한글 이제 배워서 시 조금씩 쓰는 할머니들 얘기가 다큐로 나온 걸 몇 번 본 적 있는데요.
(다 다른 동네, 다른 할머니들 얘기)
어떤 건 정말 눈물나게 좋았어요. 그 할머니들이 시 쓰는 교육을 따로 받아서 그런 감동적인 시를 쓸 수 있었다기보다는, 진심을 담아 솔직하게 썼으니 그게 전달된 거 아니겠어요?
그런 식으로... '내 눈에 보이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에서 나아가
'내가 이 시에 담고 싶은 말'을 해 보는 쪽으로 더 가 보시라고 권해 봅니다.
할머니들 시를 얘기하다 보니 생각난 영화의 한 장면이 있는데요.
'찬실이는 복도 많지'라는 영화에서(여기서 아마 배우 강말금이 처음으로 대중에 얼굴을 널리 알렸을 거예요. 그 후로 잘 돼서 너무 좋아요.) 배우 윤여정 씨가 찬실이(강말금)의 셋방 주인집 할머니로 나와요. 이 할머니가 서툴게 시를 쓰고, 그걸 아주 천천히 읽어요. 그 중 인상깊은 구절이 이거였어요.
'사람도 꽃처럼 돌아오면은
얼마나 좋겠습니까.'
영화 속 찬실이도 울고 영화 보고 앉아 있던 저도 울고. ㅎ
사람은 한 번 가면 돌아오지 않죠. 꽃은 계절마다 피고 또 피는데.
떠나간 그리운 사람(들)을 '그립다'는 말을 하나도 쓰지 않고도 얼마나 절절히 그리워하는지를 말해 주는 한 줄이었어요.
물론 이건 실제로 할머니가 썼다기보다는 아마 대본을 쓴 감독이 썼겠지만...
이런 게 시가 된다, 하는 걸 말하고 싶어서 얘기해 봤습니다.
-마지막으로, 잘 쓰고 싶다면(잘 쓰고 싶으신 거 맞죠? 그러니까 봐 달라고 올리시는 거 아닐까요)
시를 많이 읽으세요. 너무 뻔한 얘기 같지만 이만 한 불변의 진리도 없을 거예요.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좋습니다.
요즘 나오는 젊은 시인들의 시집도 좋고, 유명한 시인들의 오래된 시집들도 좋아요.
많이 읽으면 시가 마음에 다가와 담길 거예요.
충분히 채워지면, 저절로 흘러넘칠 수 있게도 되지요. 그게 시가 될 거예요.
아까는 잠이 안 와서 쓰기 시작했는데 이제 너무 늦었네요.
늦게라도 보시길 바라며 저는 이만.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