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민 의원이 추진 중인 사면금지법(내란범 사면 원천 차단)이 즉시 법사위·본회의 통과되어야 합니다.
지귀연 재판부의 1심 판결 요지에 내장된 문제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핵심 쟁점을 ‘국회 군 투입’으로 협소화함으로써, 여타 12.3 내란의 측면들을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와 연동된 것으로 다른 하나는, 12.3 내란의 의미를 사소화하고 있으며 정확히 12.3 직후부터 윤석열과 내란세력이 되풀이해 강조했던 ‘내란의 사소화’라는 부인 전략을 재판부가 수용했다는 점이다.
1.
구체적으로 풀어보자. 일단 국회에 군을 ‘투입했다’는 반복된 표현부터 문제인데, 일견 중립적인 술어처럼 보이지만 실상 사건의 함의를 누락한다는 점에서 함축적 부인implicit denial의 효과를 가진다. 국회 투입이 아니라 국회 침탈 같은 표현이 더 정확하고 객관적이다.중요 쟁점이 아니므로 여기까지만.
더 중요한 쟁점은 ‘12.3 내란’의 범위다. 무엇을 내란으로 볼 것인가. 지귀연 재판부는 명시적으로 ’국회 군 투입‘만을 중심 사건으로 보겠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세 곳의 선관위 건물에 군을 투입하고, 방송국에 단전 단수를 지시한 것은 내란의 사소한 일부에 지나지 않게 된다.
국회 군 투입에만 초점을 맞추면, ’허술한 계획‘ ’물리력 사용 자제‘ ’순간적인 판단‘ ’비이성적 결심‘으로 12.3 내란의 성격을 규정하게 된다. 그러나 국회를 비롯한 여러 장소 및 기관으로 출동하고, 특히 선관위 출동은 윤석열의 계엄 선포 담화가 있기 전에 이뤄졌으며, 담화가 끝난 직후 10시 30분에 707 특임대의 출동하려고 했던 (정황적으로 사실이라고 해도 전혀 무리가 없는) 계획 등등은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이렇듯 지귀연 재판부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서사를 구성하기 위해 중요한 디테일들을 누락한다. 계획이 허술했다거나 12월 3일 이전에도 종종 내란 수괴가 중요임무종사자들과 술 마시면서 한탄이나 불평을 늘어놨다고 정리한다. 그러나 이미 숱한 언론 보도가 있었듯이, 그 한탄과 불평의 내용이 ‘비상계엄 해버리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디테일을 지귀연 재판부는 전혀 다루지 않는다.(이건 후술할 논점과 연결된다. 지귀연은 ‘계엄’의 의미에 대해 아예 쟁점으로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12.3 내란’은 12월 3일 밤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만을 지시하는 개념이 아니다. 가령 4.19혁명은 4월 19일에만 일어났을까? ‘5.18 민주화운동‘는 5월 18에만 일어난 사건일까? 그럴리가. 12.3 내란은 적어도 2023년 11월 여인형, 이진우, 곽종근, 문상호가 진급 누락되지 않고 내란의 중요임무종사자로 활동할 수 있는 사령관 직위에 취임하던 때부터 시작된다고 보는 것이 옳다. 더욱이 12월 3일 이후에도 온갖 부정과 난동으로 헌재 판결이 있기 전까지 정국을 마비시키고 한국사회의 민주주의에 관한 근본적인 합의를 파괴했던 시간 전체가 ’12.3 내란‘에 포함되어야 한다.
2.
12월 3일 직후 윤석열의 내란 부인의 언어는 “경고성 계엄”이었다. 그 논리가 더 발전하여 종국에는 “계몽령”까지 이르렀다. 그 부인의 핵심은 12.3 내란의 의미를 사소화trivialization하는 것으로, 애초에 치밀하게 계획된 쿠데타가 아니라 입법독재의 상황을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계엄을 선포했다는 논리다. 쿠데타를 계획했다면 이렇게 싱겁게 끝나지 않았을 것, 이라는 근거에 입각한다는 점에서 논리적 오류(선결문제의 오류)다.
하지만 지귀연 재판부는 ‘허술한 계획’이라는 윤석열의 부정론을 사실상 수용한다. 사형이 아니라 무기징역형이 언도된 가장 핵심 이유도 이것이며, 12.3 내란에 대한 총괄적 혹은 세부적 평가에서도 마찬가지 ‘허술한 계획’이라는 서사가 반복된다. 요컨대 윤석열의 12.3 내란 부정론의 핵심 주장을 사실상 긍정한 것이다. 다만 지귀연 재판부는 모두가 지켜봤기에 ‘빼박‘ 내란이라고 할 수 있는 국회침탈만을 문제 삼는다. ‘빼박’이기에 부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외에는 사실상 중요한 문제로 언급하지 않은 채 ‘허술하다’는 평가를 통해 윤석열의 부정론을 긍정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다른 쟁점들까지 무겁게 다룰수록 ‘허술한 계획’의 서사는 유지되기 어렵다.
실은 ’허술하다‘는 평이야말로 결과론인데, 12.3 내란에 관한 보도나 기록들을 상세하게 검토한 입장에서 12.3 내란을 막아낸 것은 정말로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일단 국회를 무력화시키고 나면, 그 이후로는 지금의 이란과 같은 파국으로 치달았을 것이다. 하필이면 그날 밤 강설로 음성에서 헬기가 늦게 떴고, 이천에서 도착한 헬기가 서울로 진입하는 과정이 지연됐다. 23시 48분에 헬기가 국회에 착륙했고, 그렇게 22시 30분부터 시작해 78분 간 군의 작전 개시가 늦어지는 동안 시민 및 의원들이 국회의 모일 수 있었다. 애초에 계엄군 출동의 본래 계획대로라면, 시민과 의원이 모이기 전에 국회를 봉쇄해버리는 것이었을 테다. 타임라인을 꼼꼼히 검토하다 보면 나는 지금도 뒷덜미가 서늘해진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윤석열이 주장하고 지귀연 재판부가 승인한 부인 논리의 해악이 가장 강하게 작용하는 지점에 관해서다. ‘경고성 계엄’에서 ‘계엄령’까지의 부인 서사, 그리고 지귀연 재판부의 ‘허술한 계획’ 서사에 따르면 12.3 내란을 막아낸 것은 윤석열의 의도와 계획 또는 그의 허술함이다. 하지만 모두가 인정하는 것처럼 12.3 내란을 막아낸 결정적 요인은 국회로 달려간 시민들이다. 시민들의 행위자성을 인정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여기에 12.3 내란 부인의 핵심적 전제의 성립 여부가 달려 있다. 오늘의 판결 요지에서 지귀연 재판부는 12.3 내란 실패의 핵심 원인을 시민들의 용기가 아니라 내란수괴의 허술함으로 돌렸다.
3.
마지막으로, 더 근본적인 문제가 하나 남는다. 지귀연 재판부는 비상계엄 선포의 절차적, 형식적 요건과 실체적, 내용적 요건을 내란 및 국헌문란과 연결시키지 않겠다고 못박았다. 비상계엄의 절차적 요건의 불비함이나, 비상계엄 선포가 필요한 ‘비상사태’의 여부를 판단할 권리가 대통령에게 있다며 이를 내란 판단의 여부와 연결시키지 않겠다고 했다. 이것이 가장 이번 판결의 가장 큰 문제다. 헌법학자 대다수의 주장조차도 반영하지 않고 있다.
나는 이것이 재판부의 ‘역사에 대한 무지’에 기인한다고 본다. 대한민국에서 계엄은 언제나 ‘정치적 계엄’이었다. 지귀연 재판부는 부산정치파동이나 유신쿠데타, 5.18조차 언급하지 않았다. 국헌문란 조항이 부산정치파동에 대한 국회의 후회 및 반성으로 신형법에 삽입되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내란 및 국헌문란 판단에 부산정치파동이 언급되지 않다는 게 기이할 정도다. 그러나 비상계엄 선포를 내란과 결부시키지 않겠다고 전제했으니, 초점은 ’국회 군 투입’에만 맞춰지게 된다.
그리고 끌고 오는 역사가 로마시대부터 찰스 1세의 사례다. 계엄에 대해 침묵하고 ‘국회 무력화’만을 문제로 삼고 역사적 레퍼런스를 끌고 오려니 어색하고 우스꽝스런 논의가 전개되는 것이다. 애초에 계엄을 선포했으니 군을 투입할 수 있었고, 국회로 달려온 의원들을 ‘계엄 포고령 위반’으로 체포하려고 했던 것이다. 계엄에 관한 판단과 역사적 성찰을 누락한 판결이었기에, 이윽고 윤석열의 ’허술함‘을 무기징역의 사유로 꼽을 수 있었다.
약간 논점 일탈이지만,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이라는 단어 자체가 차별적이기에 이미 국제적으로 잘 쓰이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더불어서 선진국은 제도적으로 국회해산권을 갖추고 있어 이런 식의 극단적 갈등을 피할 수 있다는 지귀연 재판부의 언급에 대해서도 조소를 보낸다. 국회해산권을 87년 헌법에 넣지 않은 것은 대통령의 국회 무력화가 너무 손쉬워지기 때문이었다. 정말로 무지하다고 밖에 할 말이 없다.
한국현대사에서 모든 계엄의 사례가 내란과 학살의 근거였다. 아감벤이 지적하듯 초기 프랑스의 계엄 사례를 제한다면 세계사적으로도 계엄은 ‘정치적 계엄’으로 정착되어 왔다. 왜 시민들이 윤석열 사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가. 전두환 사면이라는 역사적 선례 때문이다. 그리고 계엄 선포를 통해 내란을 획책하는 ‘역사적 계엄’이 줄곧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내란의 역사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사법부 역시 계엄의 정치성을 명확하게 판단하고서, 면죄부를 차단하는 판결이 필요했다. 결국 지귀연 재판부의 1심 판결은 미래에 또 다시 계엄 선포를 통해 내란을 일으킬 가능성을 보존해 두었다.
이 반복되는 역사에 무지하기에 재판부는 비상계엄이 어떻게 학살의 정당화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5.18을 언급하지 않은 것도 그래서다. 계엄을 통해 계엄군을 국회로 보내고, 그 다음 순서로 정황적으로 그리고 개연적으로 명백한 ‘정치적 탄압’이 발생할 것이다. 설령 노상원 수첩을 증거로 인정하지 않더라도, 계엄이 가져올 국가폭력 및 학살의 가능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은 것은 참으로 이상하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지귀연 재판부가 ‘빼박’ 외에는 윤석열의 손을 들어주었다고 보는 것이다.
4.
얼마 전 페북에, 민주당이 계엄에 대해 질문하고 의심하기를 멈추고 있다고 비판했다. 나는 지귀연 재판부와 민주당이 ‘계엄’에 관해서는 그렇게 다르지 않은 입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2심 재판에서 1심 판결을 뒤집으려면, 이제는 계엄이라는 대통령의 무제한적 권한을 의심하고 추궁하는 비판적 논의가 사회적으로 크게 일어날 필요가 있다. 여기서 계엄에 대해 질문하기를 멈춘다면, 먼 미래에 또 일어날 내란에 대하여 역사적 죄를 짓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계엄’의 명분과 실재 사이의 간극에서 계엄의 허구성과 정치성을 분명히 하고, ‘계엄 없는 국가’를 상상할 때다. 미국의 ICE가 사람을 죽이고, 일본이 전쟁 가능 국가로 미끄러지는 시대에, 한국이라도 세계적 추세와는 역방향으로 나아가 보자. ‘계엄 없는 국가’를 만들어 보자.
[ 페북에서 최성용 글 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