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북극 - 제 인생의 버킷리스트 여행을 다녀왔어요^^

명절 끝나고 잠안오는 밤... 얼마전 다녀온 여행 이야기 풀어봐요 

긴 글 주의!요 ^^

 

 

60대로 바뀐 첫해 첫달에 몇년 전부터 고대하던 눈과 얼음의 세상으로 떠났어요 

노르웨이 북쪽 끝 로포텐과 트롬소, 센야 등 북극권 일대와 핀란드 라플란드

그리고 남쪽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3박4일 내맘대로 뚜벅이여행을 하며 약 3주간의 여행을 마무리했어요 

나이들면 따뜻하고 편한게 좋아진다는데 저는 왜이리 눈덮힌 세상, 시리게 찬 공기, 뼈대만 남은 겨울이 좋은지^^

오랜시간 꿈꾸던 여행이었는데 막상 가보니 제 꿈과 상상력이 얼마나 부족한지 깨달았어요 

 

 

 

 

1. 빛의 세상

하얗고 고요한 세상을 볼줄 알고 그곳에 갔는데 오히려 태어나서 가장 많은 색을 보고 왔어요 

하얀게 다 하얀게 아닌... 눈에 덮혀 장식없는 생크림케잌처럼 뽀얀 곳도 있고, 유리조각처럼 유난히 반짝여서 가까이 가보니 눈이 아닌 얼음꽃으로 뒤덮힌 세상도 있었어요 

그 하얀 세상이 시간에 따라 하늘빛의 장단에 맞춰 색을 바꿉니다 

이른 밤과 새벽, 깜깜한 하늘에 파란빛이 번지면 하얀 세상은 서서히 코발트블루로 하늘빛을 받아 덩달아 파랗게 물들어요 (노르웨이 국민화가 하랄드 솔베르그의 '산 속의 겨울밤'이 바로 그 풍경! ->오슬로 국립미술관에 걸려있는데 실제로 보면 눈을 떼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운 파랑색으로 가득)

11시에 해가 떠오를 무렵, 세상은 분홍색으로 바뀌고 차차 산호색으로 변하면서 수평선에 가느다란 하늘색 띠가 생겨요 

점점 하늘색이 분홍색을 밀어내다가 어느 순간 흰산 위 꼭지점이 어디선가 떠오른 태양빛을 받아 황금색으로 발광!

태양이 낮게 뜨고 올라오기도 전에 다시 지니 설산 끝 로즈골드 삼각형들이 태양 대신 하늘에 떠 있어요 

거울같은 피요르 바다에 비치면 완벽한 데칼코마니! 황금색 삼각형이 땅 위에 하나, 바다에 하나

그렇게 일출에 흥분하여 사진찍다보면 어느덧 해질 시간..

세시간 반짝 떴다가 가라앉는 태양으로부터 부드럽게 퍼지는 노랑과 주황의 하늘, 그곳에 잎사귀 떨구고 잔가지만 가득한 나무의 검은 실루엣이 부각되면 그냥 그림이고 엽서가 됨

순식간에 어둠이 차고 오로라가 너울거리면 하얀 세상과 검은 바다에 오로라가 비추어 알록달록 딴세상

세상이 다 하얀 그곳에선 낮엔 태양이, 밤에 오로라가 세상에 색을 뿌려댑니다 

참, 너무 고요해서 눈내리는 한밤중 얼어붙은 강에서 쩡!하고 얼음 갈라지는 깊은 소리가 한번씩 들리던.. 먼지 하나 없는 눈밭에서 목이 마를 때마다 한웅큼 눈퍼서 먹으면 속이 뻥 뚫리던... 감각기관이 즐거웠던 세상이었어요

 

 

2. 오로라에 시달림

전에 오로라를 본 적이 있어 오로라에 큰 기대없이 갔어요 

그런데 비행기 4번타고 이틀에 걸쳐 로포텐 섬에 도착한 밤(실은 오후 5시) 바닷가 숙소에 짐푸는데 오로라가 뙇!

사람들 뛰쳐나오고 바다 위 하늘에 일렁이는 초록빛 오로라를 보며 다들 "첫날부터 오로라라니.. 오로라 숙제 끝!"이라며 맘편히 즐겼는데 둘째날 오후 4시반에 또 오로라가 휘날리기 시작

밤새 펄럭펄럭 오로라 커튼이 휘날리다 거대한 또아리를 틀다가 요술램프 연기처럼 피어오르다 플라멩코 드레스처럼 3단 4단으로 나풀거리다가 발레리나가 입은 튜튜처럼 사르르 펼쳐지고.. 정신을 쏙 빼놓았어요

첫날엔 형광 초록빛이더니 (초록빛은 대기권내 100키로 범위, 빨강이나 다른 색들은 400키로 이상의 거리에서 생긴다고 함) 둘째날부터는 빨강과 초록의 성탄절 조합이 되었다가, 상자에 나란히 꽂힌 12색 크레파스를 보는듯 했다가, 보라색으로 뒤덮었다가.. 예측이 안되는 색과 모양으로 변신에 변신

오로라도 예쁘지만 오로라 뒤 빽빽이 찬 별들을 보면 가슴이 터질듯!

이 정도로 센 오로라를 봤으니 일생 볼 오로라는 다 본 셈이라 생각했는데.. 셋째날 다른 동네로 이동 후 오후가 되니 더더 강렬한 오로라가 여기저기 날뛰고 하늘을 가로지르고 난리 ㅎㅎ

 

보통 오로라는 육안으로는 하늘의 뿌연 줄로 보이고 사진찍으면 초록색 윤곽이 보이는 정도인데 저희가 가있는 동안은 육안으로도 사진 속 오로라처럼 진하게 보이고 머리 위에서 번개처럼 지직거려서 사람들이 지구 멸망의 날이 가까워졌구나 하고 수근거림 

오로라 앱에서 수치 4-5면 완전 좋은 날로 치는데 저희가 있을 때 8.68까지 올라가서 다들 놀람

찾아보니 20년 만에 최고로 강한 태양 폭풍이 생겨서 오로라 관측이 가능한 북극권 벨트 밖의 나라들에서도 관찰이 가능하다는 실시간 기사가 막 올라오더라고요 

그래서 잠도 못자고 (잘 수 있었는데 차마 오로라를 두고 들어갈 수가 없었음ㅠ) 핫팩을 온몸에 두르고 밖에 나와 환상적인 오로라를 보는 댓가로 목과 허리디스크를 내어주고 오로라의 노예가 됨 ㅎㅎ

너무 힘들어 두시간이라도 눈붙이고 나오면 아직도 펄럭펄럭.. 이쪽에서 이글거리다 어느새 건너편 산 위에서 성화봉송하듯 피어오르고.. 그러다 넓은 바다 위에 보자기 펼치듯 온갖 모양의 오로라가 다 튀어나옴

날마다 강렬해져서 그 밑에 서있다 감전되는거 아닌가 살짝 무섭기까지..

노르웨이 지역에선 오로라 축제에 다들 에헤라디야! 들썩이는 동안 옆나라 아이슬란드에선 수치가 이리 높은데 구름과 비에 가려 한번도 못 봤다고 sns에 실시간 하소연에 저주, 기도까지... 

화려하고 강렬한 오로라들이 난무했던 일주일.. 가장 제 맘에 들었던건 하늘 한쪽에서 다른 끝으로 피아노 건반이 끝없이 늘어지고 누군가 건반을 드르륵 훑으며 연주하듯 빛이 움직이던 오로라였어요 

일주일 내내 저희를 괴롭힌 오로라 덕에 다크서클 늘어진 디스크 환자들이 되어 "오로라야, 제발 오늘은 잠 좀 자게 나오지 말아줘!"라는 우스개 소리를 했던, 지나고 보면 행복하고 행운 가득한 시간이었네요 

 

 

그 외

짧고 강렬했던 핀란드 개썰매 - 노르웨이가 눈과 얼음으로 덮혔다면 핀란드 라플란드는 그냥 백설기 덩이로 덮힌 크리스마스 카드 그 자체! 영하 23도의 겨울 왕국에서 하얀 숲속을 기운넘치는 허스키들이 박력있게 끌고 달리는데 꿈인지 현실인지 믿겨지지 않음. 나무들 사이로 숲길을 돌 때마다 하얀 숲을 뚫고 들어오는 황금빛 햇살에 혼이 빠져나감... 15분 탔다는데 느낌은 5초 ㅠㅠ 그나마 우리 썰매 뒤쪽에서 개들을 조종하던 여자의 하얗게 얼어붙은 흰 속눈썹을 보고 ㅎㅎ 정신차려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던 개썰매의 추억!

 

장난감 같은 경비행기 - 섬에 갈 때 겨울에는 배가 안 떠 20명 정도 타는 경비행기를 탔는데 멀미 걱정과 달리 타고보니 신세계! (내부는 한국 시내버스처럼 2-2 자리에 맨뒤 5자리 ㅎㅎ 먼저 앉는 사람이 임자, 단 한명의 여승무원이 한 일은 초콜렛과 사탕 나눠준게 전부 ㅎㅎ) 보통 비행기는 너무 높이 날아서 구름 밖에 안 보이는데 이건 구름 아래로 낮게 나니 얼어붙은 북극 동네가 발밑에 깔려 새가 되어 나는 느낌! 오후 2시반 비행기였는데 때마침 일몰이라 진초록 바다에 여기저기 떠있는 하얀 섬들, 그 너머로 가라앉는 금빛 태양을 보며 터져나오는 감탄의 소리를 죽이느라 힘들었음 (뭉크의 대작 '태양'이 떠오르던 풍광이었어요) 

 

말 수 적지 않은 노르웨이 사람들 - 어느 비행기에서 제 양 옆에 앉았던 노르웨이 아줌마 아저씨, 처음엔 다들 책보고 전화기에 글쓰고 있길래 방해받고 싶지 않은가보다 해서 저도 조용히 갔는데 중간에 물어보고 싶은게 생겨서 책읽다 잠든 아줌마 말고 아저씨에게 말을 걸었다가 두런두런 얘기를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자는 줄 알았던 아줌마가 스리슬쩍 끼어들어 우리 얘기에 맞장구치기 시작 ㅎㅎ 그때부터 두 사람은 자기 동네 이야기, 가족 얘기, 사진도 보여주고 여행 조언도 해주고 하다보니 목적지 공항에 도착.. 여행자들에게 현지인들의 이야기는 노잣돈 한묶음 거저 받은 기분이죠^^ 그쪽 사람들 낮가리고 말 수 적다는 얘기도 사바사인듯 ^^

 

친절한 노르웨이 사람들 - 국립미술관 입장 10분 전, 입구에 시큐리티 아저씨가 인상이 좋아보이길래 오슬로에 관해 궁금했던 것을 물어봤어요.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동화책 읽어주듯 어찌나 친절하고 구수하게 알려주던지 감동감동~ 10시가 되자 문을 열어주며 저희가 오늘의 첫 입장객이라고 환영인사를 하며 입장시켜줘서 기분좋게 관람. 오슬로 시내 1600년대에 지은 대성당의 자원봉사 할머니도 친절 여왕님! 대성당 건축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을 바흐 조각상이 새겨져있길래 물었더니 교회와 바흐 음악의 밀접성과 동네 역사까지 자상하고 꼼꼼한 설명으로 제 궁금증을 풀어주심... 그러면서 다음날 파이프오르간 연주가 있는데 관심있으면 오라 해서 신나서 갔더니 오르간 연주자가 옛날 유럽 귀족들이 신었을법한 높은 굽 구두를 신고 팔 2개와 다리 2개를 제각각 움직이며 연주하는 색다른 구경을 함. 짝짝짝!!

 

피지컬 훌륭한 노르웨이 사람들 - 오슬로에 머무는 동안 매일 아침 오페라 하우스, 뭉크미술관, 아케르스후스 요새, 시청, 국립미술관을 잇는 시내 바닷가를 산책했는데 출근 시간이 가까워오면 조용한 시내에 종소리가 울려요. 여기저기 무채색 옷차림을 하고 출근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그런데 실루엣들이 장난 아님 @@ 눈날리는 오슬로 시청 앞 광장에 2미터 가까운 남자들이 검정코트 깃 세우고 가죽가방을 들고 말없이 성큼성큼 긴다리로 걸어가는걸 보고 있으면 가슴 깊은 곳에서 떨림이.. ㅎㅎ 한번은 길에서 장애물 피하려다 뛰어가던 누군가와 부딪혔는데 제 팔이 닿은 곳은 그 사람의 다리! 멈칫하며 쳐다보니 머리가 저 꼭대기..ㅎㅎ 굵은 웨이브 머리를 한 훤칠한 청년이었는데 미안하다고 하면서 저도 모르게 미소가... ^^

 

지금도 생각하면 군침도는 음식 - 노르웨이 전통음식 중에 로포텐 섬에서 유명한 피쉬슾이 있어요. 바닷가재 삶은 물에 크림과 생선 살덩이, 새우, 샐러리를 넣어 고소하면서 느끼하지 않고 풍미짙은 따끈한 슾. 바게트 빵과 먹으면 훌륭한 점심식사! 그리고 노르웨이 청정바다에서 갓잡은 생물 새우찜은 식감만으로 다른 요리를 제껴놓게 만드는 마성의 맛이예요. 쫀독한 식감과 싱싱한 바다 맛이 느껴져서 새우 싫어하는 제가 친구가 권하길래 한개 까먹어보고는 접시 끌어안고 적극적으로 까먹었다는 ㅎㅎ 홍합찜도 굿! 언제 오슬로 가시면 skansen이라는 오래된 식당에 가셔서 피쉬슾과 아티초크슾 드셔보세요. 입안이 황홀해져요^^

 

 

 

 

이 외에도 다사다난, 별 일이 다 있었던 여행이었지만 줄이고 줄여서 여기까지..

끝으로 제가 이런 여행을 할 수 있게 도와주신 동네 정형외과의사에게 감사를! ㅎㅎ

출발 한달 전 발목뼈가 부러지고 인대가 끊어져 갈 수 있을까 걱정하던 제게 여행매니아인 의사가 제 심정을 백분 이해하며 어떻게든 여행갈 수 있게 도와준다고 정성으로 치료해준 덕분에 눈밭 누비며 소원을 이룰 수 있었네요 

 

 

 

 

최근 많이 읽은 글

(주)한마루 L&C 대표이사 김혜경.
copyright © 2002-2018 82cook.com.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