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병원에서의 나는 잠시 다른 사람이 되었다

 

나는 원래 사람을 쉽게 믿지 않는다.

내 사람이라고 확신이 서야 마음을 쓰는 편이고,

그 외에는 선을 분명히 긋는다.

스스로를 차갑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런데 병원에 몇 달을 있으면서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처음엔 매일 울었다.

왜 하필 나인가 싶었고,

운명 탓을 하다가 결국은 내 탓으로 돌렸다.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흘렀다.

몸이 아픈 것보다, 멈춰버린 삶이 더 서러웠다.

 

다인실이었다.

낯선 사람들과 하루 종일 같은 공간을 공유했다.

처음엔 불편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묘한 전우애가 생겼다.

같은 냄새, 같은 식판, 같은 한숨.

다들 하나씩은 무거운 사연을 안고 있었다.

 

그 공간에 오래 있다 보니

나는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말랑해졌다.

사람들의 사정이 들렸고,

그게 남 일 같지 않았다.

아마도 나 역시 약해져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중 한 남자가 있었다.

나보다 열 살 이상 많았고,

다리가 부러져 움직임이 불편했다.

입담이 좋았고, 작은 간식이라도 생기면 나눠주었다.

 

퇴원을 앞두고 짐을 정리하다가

문득 그 사람이 떠올랐다.

빨래할 게 있으면 마지막으로 해주고 가겠다고 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냄새 나는 양말과 누렇게 변한 흰 티를 내밀었다.

 

이상하게도 그게 불쾌하지 않았다.

그저 사지 불편한 사람이 혼자 빨지 못한 옷처럼 보였다.

나는 빨래비누로 힘껏 문질렀다.

 

그 장면을 남자친구가 봤다.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왜 그런 걸 네가 하냐”고,

“그건 선 넘은 부탁”이라고 했다.

 

그때의 나는 오히려 그 말이 더 이상했다.

힘든 사람을 돕는 게 왜 문제냐고 반박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나는 방어가 완전히 풀려 있었다.

 

퇴원 후 일상으로 돌아오자

병원에서의 일들은 빠르게 희미해졌다.

적응하느라 바빴고,

그곳 사람들은 점점 배경이 되었다.

 

그리고 일주일 뒤,

그 남자에게 연락이 왔다.

오만원만 빌려달라고.

 

그 문자를 보는 순간,

정신이 확 들었다.

곧바로 차단했다.

 

병원 안의 나와

병원 밖의 나는 다른 사람이었다.

 

나는 착해졌던 걸까.

아니면 그냥 약해져 있었던 걸까.

 

병원이라는 공간은

사람을 고립시키면서도 묶어둔다.

밖에서라면 경계했을 사람들과

안에서는 서로 기대게 된다.

아픔이라는 공통분모가

선을 흐리게 만든다.

 

나는 보살이 된 게 아니었다.

그저 무너져 있었고,

그래서 남의 무너짐이 더 잘 보였던 것이다.

 

퇴원 후 내가 다시 차가워진 것이

회복이었는지,

아니면 방어의 재가동이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하나는 알겠다.

사람의 성격은 고정된 캐릭터가 아니라는 것.

환경이 달라지면 작동 방식도 달라진다.

 

병원에서의 나는

낯설었지만 거짓은 아니었다.

그 역시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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