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때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고 물을때마다 세종대왕, 이순신 같은 거창한 인물을 이야기하던 다른 아이들과 달리 난 항상 똑같이 대답했었다.
우리 엄마!
아주 어릴때부터 그랬던것 같다.
엄마가 대단한 학식이 있어서도 아니고 지위가 높아서도 아니었다. 엄마의 삶의 모습이 나에겐 그냥 존경할수밖에 없는 모습 그 자체였었다.
엄마는 아주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고 어느정도 부유한 생활을 하며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셨다. 외할아버지가 그당시 2개의 고시를 패스 하신 고위 공직자셨고 지역의 대단한 유지셨다. 얼굴도 고우셔서 동네 남자들 중 외할머니의 부지깽이에 안맞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집앞에 진을 치고 있었다고 어느날 아주 담담하게 이야기하셨다.
그러다가 외할아버지의 4번의 국회의원 출마 실패가 집안을 어렵게 만들었고 그리하여 머리좋던 우리 엄마는 대학대신 사범학교에 가게 되어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중학교때 선생님이 못풀던 문제를 풀어 수학천재 타이틀까지 가지고 계셨던 엄마였는데 대학을 못간것이 못내 자존심 상해 공부를 놔버렸다고 하셨다. 졸업후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시다가 아빠를 만나 결혼을 하셨는데 그 당시 아빠는 잘생기고 학벌도 서울대에 똑똑한 모습에 반하신듯 했다.
딱 거기까지. 엄마의 행복은 진짜 딱 거기까지였다.
아빠... 우리아빠는 상처가 정말로 많은 분이셨다. 가난한집안에서 태어나 어릴때부터 남의집 살이를 하느라 남은것은 독기밖에 없던 .. 결국 자기자신만이 가진것의 전부였던 사람이었기에 완벽한 이기주의자였고 사랑을 못받고 자라신분이라 사랑을 줄줄도 받을줄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어릴때 엄마와 아빠가 다투는 모습을 많이 보았는데 사실 다툰다고 말하기도 이상한 ... 그냥 일방적인 아빠의 폭언, 폭력이 전부인 싸움이었다.
밤새도록 던지고 깨고 때리고하는 와중에도 엄마의 목소리는 안들렸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다리미에 눈을 맞아 보라색이 된 얼굴로도 환하게 웃으며
" 뭘봐. 보라색 화장한 사람 처음봐? 야, 요새는 보라색 화장이 유행이야 이거 왜이래?"
하시며 아무렇지도 않은듯 랄랄랄 콧노래까지 부르시던 엄마였다. 아이들이 걱정하게 하지 않으려 이 악물고 참던 엄마의 마음을 생각하면 어떻게 그럴수 있으셨을까 그 마음이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늘 유머가 가득한 사람. 가끔씩 촌철살인과 유머를 섞어 우리를 빵빵 터지게 만들던 분, 주위의 모든이에게 사랑을 받고 모든 사람이 다 좋아하던 분, 세상 어떤 어려움도 별일 아닌것으로 만들어버리는 현명한 사람. 태양보다 밝던 사람이 바로 우리 엄마인데 어떻게 내가 존경하지 않을수 있었을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건 전쟁도 재난도 아닌 엄마가 없는 거 였던 내게 엄마의 십이지장 암 소식은 ... 듣자마자 무릎이 꺾이게 하는 일이었다. 그 소식을 지하철에서 듣고 정말로 드라마에서 처럼 무릎이 꺾여 넘어지는 경험을 했다.
지금 내나이가 60인데 엄마는 65세에 돌아가셨다.
병을 알게 된 후부터 돌아가시기까지 두달... 그 시간을 나는 어떻게 살아냈는지...
자식들이 모두 휴직을 하며 가실때까지 간병인 손에 맡기지 않았다. 병실도 1인실을 고집했다. 엄마에게 받은것의 몇억분의 1도 안되는 작은일이지만 그거라도 해야 우리 맘이 조금 위안받을것 같았다.
어느날 엄마랑 단둘이 병실에 있을때 엄마가 조용히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셨다.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 냉정한 사람이지만 그렇게 사랑했던 기억을 잊을수는 없을거야. '
그 쓸쓸하던 노래를 나야말로 죽을때까지 잊을수 없을것 같다.
엄마가 그리워하던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아빠였을까...
그게 누구였든 그날의 엄마 모습은 내게 영원히 잊을수 없는 모습으로 남았다
사랑하는 엄마, 내 평생 존경했던 엄마.
세상의 그 어떤 고통도 엄마가 내 엄마였던 행운보다 클수는 없어.
나의 인생 목표가 엄마같은 엄마가 되는 것이었어.
내 세상의 거의 전부였던 엄마. 그곳은 평안하지? 보고싶다.
고마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