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나이차이 10살차이나는 우리 이모
큰 딸이었던 우리엄마하고는 서른살 넘게 차이가 났었어요..
외갓집에 여름방학이고 겨울방학에 내려가면
결혼 안한 이모가 조카인 나를 데리고 여기저기 구경도 시켜주고
코바늘 뜨기, 대바늘 뜨기도 알려주고, 들판에서 나물캐며 나물 이름도 알려주고
좋은 시 있으며 읽어주고 조카처럼, 동생처럼 ,딸처럼 저와 지냈었어요
그러다 동네분 소개로 맞선을 보고 결혼을 했어요
멀리 지방으로 결혼을 해서 떠난지라 명절에만 잠시 보곤 햇는데
.....
벌써 6년이 흘렀네요.. 돌아가셨어요.
누우면 기침이 많이 난다고, 잠을 통 못잔다고
동네 병원에 갔다가 흉부X선 한장 찍었는데 암 같다고 큰 병원으로 가라고 진료의뢰서를 받았다죠.
그때 이모가 환갑되기 하루 전 날이었어요
제게 전화를 해서 가족들하고 환갑기념 식사를 이틀 뒤 토요일에 하기로 했는데
큰 병원 .. 월요일에 가도 되겠지?
제가 의뢰서 받은거 우선 가보라고 병원 꼭 가라고 하고 했는데
그 다음날 엄마가 전화가 왔어요
지방 대학병원에 갔는데 사진이랑 의뢰서 보더니 입원하라고 했데요
그리고 그날(금요일) 이런저런 검사 다하고나서 바로 폐암 4기 진단 받았어요
수술할 수 없는 부위, 수술할 수 없는 크기, 예후가 안 좋은...
그리고 이모는 충청도 어느 도시에서 서울대 혜화로 본인이 운전해 다니며 항암을 받았어요
빌어먹을 이모부는 단 한번도 이모랑 병원을 동행하지 않았고
서울대 병원 가깝게 살고 이모가 언니같았던 제가 늘 병원에 동행했어요
처음에 이모는 용감하고 당당해 보였어요
항암하면서 표적치료 하면서 주치의에게 자기 증상 이야기 하고 설명듣고
궁금한거 물어보고... 겁 안나 보였어요. 그런데 무서웠겠죠?
한달마다 병원에 가서 보는 이모는 조금씩 작아졌어요.
부축하지 않으면 잘 서지도 못하기도 했어요..
어느날, 이제 항암은 안한다고 표적치료도 안한다고..
딸내 집에 들어갔다고 소식들 들었고
그리고 석달뒤 병원에 다시 입원했고 임종이 얼마 안남았다고 엄마가 병원으로 가자고 했어요.
병원에 가니 이모는 거의 임종직전이었어요.
몸무게도 30 조금 넘어보이고 눈빛만 나를 알아봤어요.
아.. 이게 마지막일수도 있겠다..
이모 몸을 물수건으로 닦아주고 입에 물에적신 거즈 물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엄청 울었어요.
그리고 하루 뒤 돌아가셨어요
딸, 아들, 이모부 모두 자리를 비운시간 혼자 갔어요
(가족들이 사는동안 이모를 많이 힘들게 했어요.. )
장례치루는 중간
엄마랑 다른 이모들이 장례식장이 씻는게 불편하니 이모집에 가서 잠시 씻고오자고해서
이모없는 이모집을 처음으로 가게 되었어요
이모옷이 거의 없는 옷장(그사이 본인이 옷정리를 다했다고)
리빙박스에 여름옷, 가을옷, 겨울옷, 보험서류, 라벨링 해놓은거
냉장고에 몇년전 고춧가루, 몇년 볶은깨, 찹쌀가루, 멥쌀가루
씽크대에 양념통에 소금, 후추가루, 다시다....
본인이 없어도 누구도 와서 살수있게 정리된 집
심지어 이모 휴대폰에도 사진 다 지우고 영정사진 한장 남겨놓았더래요
클이어 화일에 보험든거, 증서, 통장, 비번 다 정리하고
이모는 그렇게 떠났어요
어른들은
독한다... 라고 했고
부인 잃은 이모부는
이러니 내가 정을 줄수가 없지 않겠어요?... 라고 했고
엄마 잃은 사촌동생은
언니.. 나 엄청 모진가봐.. 그렇게 눈물은 안나네.. 라고 했고
울엄마, 나, 남은 이모들만 눈이 짓무르게 울고 또 울었어요
그때는 이모가 참 억울하겠다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제 조금있으면 이모 나이가 되니 나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내가 내 병세를 정확히 알고 준비하고 단정하게 떠나는 이별..
사고처럼 황망하지도 않고, 몇년을 아프지도 않고..
요즘 이모생각이 많이 나네요.
내 동생 꿈에 나와서 "여기 남자들은 참 친절해.." 라고 했다던데
거기서는 즐겁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