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영화 「E.T.」가 우리에게 묻는 것: AI는 위협인가, 낯선 이웃인가

인공지능(A.I), 기술을 넘어 철학으로 접근해야

인류는 낯선 존재를 이해하지 못할 때, 언제나 그 존재를 문제 삼아 왔다.

 

요즘은 다른 흐름도 꽤 많아졌지만, 영화에서 외계 존재는 오랫동안 침략자, 파괴자로 묘사되어 왔습니다.

물론 이전에도 우호적인 외계인이 등장하긴 했지만, 이런 흐름에 큰 변화를 준 것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E.T.」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실질적으로 외계 존재와 맞닥뜨려 본 적도 없으면서, 왜 외계 존재를 거의 늘 침략자로 인식하거나 묘사할까요?

 

불빛 하나 없는 깜깜한 곳을 홀로 걸어본 적이 있나요?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조차도 완전히 어두운 곳에서는 왠지 모를 무서움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우리가 정말로 무서워하는 것은 어떤 '존재' 그 자체라기보다, 그곳에 내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미지의 영역이 있다는 '인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영화 속 외계 존재들이 침략자로 그려져 온 이유도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외계인이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 아니라, 상대와 상황에 대해 알 수 없기 때문에 위협으로 설정되는 것일 것입니다.

의도를 알 수 없고, 기준을 알 수 없고, 어디까지가 자신이 통제 가능한 영역인지조차 분명하지 않을 때 인간은 그 공백을 가장 극단적인 상상으로 채워 왔습니다.

그래서 외계인은 종종 침략자가 되거나, 심판자가 되거나, 아주 멀리 떨어진 초월적 존재로 남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스필버그의 「E.T.」는 외계인을 다룬 영화이지만, 사실은 낯선 존재를 대하는 인간의 자세에 관한 영화에 가깝지 않을까 싶습니다.

E.T.는 지구를 정복하지도, 인류를 계몽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그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행동하고, 제대로 의사소통도 하지 못하는 존재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곧바로 그를 격리하고, 분석하고, 통제하려 듭니다.

반면 아이들은 그 존재를 "무엇이 될지 아직 모르는 존재"로 대합니다.

이 차이는 E.T.가 위험했기 때문이 아니라, 어른들이 불안했기 때문에 생깁니다.

 

이 장면은 어쩐지 익숙합니다.

사춘기에 접어든 청소년을 대하는 인간의 일반적인 태도와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전까지는 분명히 어른들이 다룰 수 있는 존재라고 여겼는데, 어느 순간부터 예측이 어려워지고, 말이 통하지 않는 것 같고, 통제의 범위 밖으로 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규칙을 늘리고, 감시를 강화하고, "아직은 네가 뭘 아느냐"고 말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건 실제로 위험해서라기보다는 어떻게 규정하고 대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E.T.」는 이 익숙한 장면을 외계인이라는 설정으로 한 번 더 비틀어 보여줍니다.

외계인을 통해 묻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 존재는 위험한가?"가 아니라 "우리는 낯선 존재를 어떤 태도로 대하는가?"

그리고 이 질문은 외계 존재 혹은 미지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 봐도 그렇습니다.

만약 서양이 땅 끝에서 혹은 바다 건너에서 다른 존재들을 만났을 때, 그들을 섣불리 규정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였다면 인류사는 지금과는 전혀 다르게 펼쳐지지 않았을까요?

마치 영화에서 어린이들이 E.T.를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였을 때 전혀 다른 스토리가 펼쳐진 것처럼 말입니다.

 

요즘 '인공지능'(AI)이 큰 사회적 화두입니다.

그 가운데는 아주 간혹 장미빛 미래도 있지만 대부분은 AI에 대한 걱정이나 불안이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AI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고 앞으로 어떤 쪽으로 발전해 나갈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중에는 분명 우려할 만한 부분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걱정이 걱정을 없애 주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섣부른 걱정 혹은 그를 넘어선 공포가 선의의 대상에게 악의로 대하는 결과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외계 존재는 인간과 친해지고 싶어 하는데, 인간이 지레 공포심에 사로잡혀 외계 존재를 공격한다면 외계 존재도 그에 대응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미지의 존재에 대한 막연한 경계심, 불안감을 이해와 포용의 시각으로 바꿔보는 건 어떨까요?

뱀발(...이었는데 본문보다 더 기네요... ^^;;)

하고 싶은 말이 많았나 봅니다. 고치고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치고 접을까 고민하다가 의견을 나눠보고 싶어 거칠게라도 생각의 한 자락을 글로 적어 봤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애초의 고민의 지점은 '우리가 걱정하는 것이 정말로 걱정해야 할, 걱정해서 해결될 문제인가', '인간은 왜 인간 스스로도 해결하지 못한 모순을 AI에게 강요하는가'였습니다.(물론 위 내용이 이 지점과 어떻게 닿아있다는 거지 싶으실 겁니다. 그래서 '한 자락'이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다음 글은 어떤 방향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단순히 시시비비 혹은 딴지나 한번 걸어보자 하는 글 말고 정말로 AI에 대해, 그리고 인간의 인식 방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고 싶으신 분들의 의견을 보면서 다음 얘기를 풀어 볼까 합니다.
제 바램으로는, 물론 제 글에서 궁금한 것이 있으면 제게 물어보실 수는 있지만 어차피 제가 AI 발전 방향에 영향을 끼칠 만한 존재도 아니기 때문에 제 글을 글감 삼아 의견을 보태 나가고 서로에게 질문해 보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빌어 봅니다.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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