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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리함에 취해 '실내 인간'이 되어가지만, 검색으로 찾은 정보가 피부에 닿는 현실을 대체할 순 없다. AI 덕분에 더 똑똑해졌지만, 역설적으로 현장은 더 절실해졌다. 흙을 밟아야 숲이 보이고, 사람과 눈을 맞춰야 세상이 읽힌다."
대다수의 직업들에서 정보 습득을 뛰어넘는 깊은 통찰을 지닌 실력자들만 남을 것이라는 전망에 어느 정도 동의해요.
그런데 직업이 남느냐 마느냐의 문제보다 삶의 경험과 관계내에서 체득하는 것 등 인간다움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서 놓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미래를 고민한다면요
좋은 글이라 생각되어 공유합니다
[필동정담] '경험의 멸종'을 거부할 결심
이제는 전혀 다른 분야의 일을 하고 있어 까맣게 잊고 살았지만 사실 나는 대학에서 생태학을 전공했다. 특정한 영역만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생물과 환경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이루는 거대한 시스템을 공부한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바다와 지구 같은 거대 생태계도, 작은 연못 하나도 엄연히 하나의 우주였다. 그 시절 생태학자는 곧 '현장의 사람'이었다. 숲과 물가를 누비며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풀 냄새를 맡으며 데이터를 얻었다.
갑자기 옛 전공을 다시 떠올린 건 최근 과학저널 네이처에 나온 '나는 거의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I rarely get outside)'라는 제목의 기사 때문이다. 최근의 생태학자는 논문을 쓸 때까지 연구 대상인 꽃잎을 단 한 번도 만져 보지 않는다고 했다. 그 대신 그는 연구실에서 수백만 장의 이미지를 인공지능(AI)에 입력했다. AI는 순식간에 기온 변화에 따른 개화 시기를 분석해냈다.
어쩌면 이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편리함에 취해 '실내 인간'이 되어가지만, 검색으로 찾은 정보가 피부에 닿는 현실을 대체할 순 없다. AI 덕분에 더 똑똑해졌지만, 역설적으로 현장은 더 절실해졌다. 흙을 밟아야 숲이 보이고, 사람과 눈을 맞춰야 세상이 읽힌다. 좋은 기사를 위해 현장을 찾는 기자나 숲으로 향하는 생태학자의 마음은 같다.
효율성만 따지면 장화를 신는 대신 마우스를 쥐는 게 합리적일지 모른다. 하지만 정답은 항상 검색창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안락한 의자에서 일어나 장화를 신고, 기꺼이 진흙탕을 내디디며 세상과 부딪힐 결심이다.
[이새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