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사립고등학교에 갔어요. 저희 능력으로 꿈도 못꿀 비싼 학교 (미국)인데 학비 보조를 많이 받게 되어서 일단 보내 보기로 했어요. 가보니 생각보다도 아이가 적응을 잘해요, 친구도 많이 사귀고 수업을 재밌어하고 선생님들한테 칭찬도 많이 받고 성적도 우수하고 운동이랑 음악도 열심히 하고. 더 이상 바랄게 없다 싶었는데 한 가지 새로운 건, 아이가 자꾸 저한테 엄마 힘드니까 전 괜찮아요, 그런 얘기를 많이 해요. 주말인데 맛있는 거 해줄게 뭐 먹고 싶어? 물어도, 엄마 피곤한데 쉬세요. 제가 라면 끓여 먹을게요. 제가 방청소랑 빨래는 다 했어요, 그러고요. 한 달에 한 번 정도 밤에 학교 행사가 있는 걸로 아는데 매번 빠져요. 엄마가 밤늦게 운전해서 데리러 오는 거 힘들잖아요, 안 가도 괜찮아요.
그러다 연말에 학부모도 오라는 행사가 있어서 가봤더니요. 세상에, 아이들 모두 성장을 하고 가는 거였더라고요. 남자는 턱시도까진 아니라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멋진 정장, 여자는 미스코리아 대회에 입는 것 같은 화려한 드레스, 학부모들도 그 정도는 아니여도 평상복 아닌 특별한 정장. 저도 너무 당황해서 대충 뒷자리에서 행사 구경하고 집에 와서 물었죠, 너 정장이 없어서 행사에 못 간거였니? 대답은 안 하지만 그랬던 거네요. 양복이 한 벌 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한 적 있는 것 같은데 동네에 그런 옷 파는 곳도 없으니 그걸 사려면 어디를 또 가야 하고 제가 일이 바빠 그런 데 데려 갈 시간도 없고, 양복 사면 구두도 사고 넥타이 코트도 사야 하고, 아이가 그냥 알아서 포기 한 거였더라고요. 엄마가 너 양복 한 벌 사줄 돈이 왜 없어? 니가 그런 걸 왜 걱정해? 따지고 싶었지만 만 15살에 그런 걸 다 알아버리게 만든 제 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아무 말도 못 했어요. 미안해서 눈도 못 마주치겠더라고요.
연말에 며칠 쉬는 동안 4시간 운전해서 큰 도시에 가서 자라에서 양복 아래 위 사줬어요. 200불이면 되는 걸, 엄마가 그 돈도 없다고 생각했다니. 와이셔츠랑 넥타이는 아빠것 좋은 거 많으니까 그거 일단 쓰고 구두는 다음달에 사줄게. 저도 학교 졸업하기 전부터 매일 알바 뛰고 직장 생활 25년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아이한테는 좋은 것만 먹이고 최선을 다했는데, 그래도 잘 해주지 못해 미안한 부모가 되었네요. 왜 이렇게 점점 더 팍팍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