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조진웅, 불교적 가르침 멈춤의 힘

중아함경의 「앙굴리말라경」에는 잔혹한 살인자가 한 사람 등장한다. 그는 거의 천 명에 이르는 사람을 죽여 그들의 손가락을 엮어 목걸이를 만들었다 하니, 바로 앙굴리말라이다. 어느 날 그는 숲길을 지나던 부처님을 향해 칼을 들고 달려든다. 분노에 사로잡힌 얼굴로, 그 어떤 것도 막지 못할 기세로 돌진하였다.

 

그러나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그가 아무리 달려도 부처님과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끝내 그는 외친다.

 

“서라, 사문이여! 멈추라!”

 

이에 부처님께서는 고요히 답하셨다.

 

“나는 이미 멈추었다. 그러나 그대는 아직 멈추지 못하였구나.”

 

그 한마디는 벼락처럼 앙굴리말라의 마음을 무너뜨렸다. 그가 칼을 내려놓고 부처님 앞에 엎드린 순간 멈춘 것은 그의 발걸음이 아니라 바로 그의 마음이었다.

 

분노가 거세지는 시대일수록 누군가를 단죄하려는 목소리는 더욱 커진다. 그러나 부처님이 앙굴리말라에게 보여준 것은 단죄가 아니라 회복의 가능성이었다.

 

세상은 그를 영원한 악인으로 규정하였으나, 부처님은 그에게 되돌아올 길을 열어주셨다. 앙굴리말라는 수행자가 되어 마침내 깨달음을 이루니, 그는 이제 ‘끝없는 악의 상징’이 아니라 구원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오늘 우리의 사회는 어떠한가. 누군가 실수하거나 잘못을 저지르면 우리는 그 사람의 과거 전체와 인격 전체를 한순간에 지워버리듯 단죄한다.

 

더욱 위험한 것은 사실보다 ‘진영의 감정’이 먼저 칼날을 들이댄다는 점이다. 누구는 맹목적으로 옹호하고, 누구는 끝없이 비난한다. 한 인간의 삶 전체가 ‘진영’이라는 틀 속에서 기계적으로 재단되고 만다.

 

정작 우리가 멈추어야 하는 것은 타인의 과거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분노인지도 모른다.

 

“진영의 깃발 아래 누군가를 지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진실을 잃고, 사람을 잃고, 마침내 스스로를 잃게 된다.”

 

앙굴리말라에게 열렸던 회복의 길은 오늘 우리의 삶에도 여전히 열려 있다. 우리가 멈추지 못하는 것이 발걸음이 아니라 마음이라면,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멈춤을 배우고 회복을 다시 생각해야 할 때이다.

최근 많이 읽은 글

(주)한마루 L&C 대표이사 김혜경.
copyright © 2002-2018 82cook.com.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