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첫 월급 탔을때 아버지의 그 한마디가 잊혀지지가 않아요

지방에서 대학 졸업후 곧장 서울로 취업.

꽤 힘든 직장이었어요.

평생 한 동네에서 살다가 갑자기 집 떠나 서울생활까지 했으니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아버지는 워낙 과묵스타일이라 대놓고 좋아하지는 않으셨지만 

한번씩 통화할때마다 자식이 대기업 다닌다고 기분이 업되어 있는게 느껴지더라구요.

그런데 가끔 전화통화 할때 내가 너무 힘들어하니

깨끗한 사무실에서 깨끗한 옷 입고

책상에 앉아

대학 나온 사람들끼리 모여 일하는데 왜 힘드냐고

이해를 아예 못하시더라구요.

초등학교 졸업장도 없는 분이고

시커먼 곳에서 시커매진 옷을 입고 장사하던 분이라

대학 나온 사람들끼리 대기업에서 모여 일하면 다 천국인줄 아신 거죠.
아! 그런데 우리아버지는 어릴때 공짜라 동네서당도 다니셨는데

하도 영특해서 훈장님이 

제발 신식교육 좀 받게 해주라고 우리 할아버지한테 통사정 할 정도로 공부소질은 있었던 분이에요.

그래서인지 모르는 한자가 없고

이해 못하는 신문 기사도 없었고

장부 기록 보면 명필처럼 글자들이 빽빽...

암산 엄청 잘 하셨고

훗날 치매걱정되어 모시고 갔을때 병원에서 빼기 암산을 시키는데

저보다 더 빨리 정확히 대답해서 속으로 제가 막 웃었잖아요.

울 아부지 아직 쌩쌩하네 이럼서 ㅎㅎ..

아무튼 그렇게 몇달 후 집에 내려가서 아버지에게 월급 턱을 내기로 했어요

아버지가 엄청 신나서 먹고 싶은거 막 먹는다 하시더라구요

그리고

엄마도 아버지도 나도 셋다 좋아하는 메뉴로 의견통일 후

동네에서 꽤 유명한 장어구이집을 갔어요.

당연히 비쌌죠. 

셋이서 

먹고 싶은 만큼 추가 주문하고 

제가 어깨 힘 딱 주고 계산하러 나오는데

아버지가 그러시는거에요

" 니가 그 고생해서 번 돈을 어찌 내 목구멍에 집어 넣냐'

그리고 아버지가 현금을 딱 내시는 겁니다.

30년전이네요. 

자식들에게 큰 재산은 안 주셨지만

평생을,  돌아가시는 즘에도 자식들 신세 안지려고 엄청 몸부림 치셨었죠.

오늘 저희 애가 대회에서 받은 상금 턱을 내기로 했어요.

아이가 내기로 하고 아이 기 엄청 살려 주면서

분위기 업되어 있는데

다 먹고 애한테 덕분에 잘 먹었다 말하고

계산직전 울 아버지가 하셨던 말씀 그대로 하고

제가 계산하려구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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