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엄마의 해방일지

나의 해방일지에서 엄마는 죽어서야 비로소 해방이 되었지요. 그것도 밥을 가스불에 올려놓고. 요즘 나의 해방도 죽어서야 오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대학 입학해서는 과외하며 돈벌어 대학생인 언니 용돈 주면서 학교 다니고, 졸업하자마자 취직해서 오십대 중반이 된 지금까지 돈 벌고 애둘 키워냈어요. 뭐 찢어지게 가난한 부모를 둔 건 아니지만 고등학교 다닐 때쯤 아빠 일이 잘 안풀려 집이 쪼들렸어요. 5남매에 둘째 딸인 저는 유난히 책임감이 있었나봐요. 대학 가서 손 안벌리고 자립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지방에서 서울로 진학해서 언니랑 자취하면서 제가 번 돈으로 생활비하며 살았어요. 가난한 남자 만나서 대출 2천만원 받고 결혼하고 또 열심히 살았어요. 맨날 돈돈하는 시어머니한테 IMF 때 집 샀다고 욕심이 고래같은 애라고 욕먹었어요. 그돈 있으면 살 날 얼마 안 남은 자기 줘야지 집 샀다고. 그때 시어머니 나이가 지금 제 나이. 그후로 30년 더 사시고 작년에 돌아가셨죠. 둘째 대학 입학하던 2020년에 이제 난 해방이다 하며 이제부터는 열심을 내려 놓고 나 하고픈 대로 살겠다고 맘 속으로 해방 선언했는데 남편이 폐암 선고를 받았어요. 나는 해방되지 못했어요.젊은 나이에 폐암이라니. 충격이 컸어요.  1기여서 수술하고 재발의 공포를 견뎌가며 이제 괜찮겠지 하면서 맘 놓을 때 쯤, 재발했어요. 4기로.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거 같았어요. 2년 동안 나의 특기인 열심으로 돌봤어요. 불행 중 다행으로 항암이 효과가 있어서 지금은 안정된 상태예요. 언제 나빠질지는 모르지만. 그 2년 동안 나는 우울증에 걸렸고 지금은 치료 받고 죽고 싶다는 생각은 안들어요. 근데 해방되고 싶어요. 자기만 알지만 착한 남편도, 똑똑하고 착한 딸들도 버거워요. 눈에 보이면 챙기게 되요. 난 내가 이들을 수발드는 존재같아요. 직장도 여전히 다니는데. 이런 맘을 얘기하며 내가 이런 느낌 들지 않게 해달랬더니 남편이 너 요즘 우울증 약 안먹지 그래요. 남편은 내가 우울증 약 먹고 씩씩하게 열심히 자기와 딸들을 수발들길 바라는 거 같아요. 내가 군소리없이 열심히 살면 나머지 세명이 편해요. 가족이 버거워요. 오늘도 원룸 검색하며 해방을 꿈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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