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남편의 예술사랑

아침에 일어나보니 남편이 세상 다 잃은 참담한 표정을 하고 있어요. 

무슨 일이냐고 놀라서 물어보니 루브르 박물관에 도둑이 들었다네요. 

남편은 각박한 세상 인심때문에 변변한 직업도 갖지 못하고 저한테 얹혀 살지만 사실 본인은 예술가라고 굳게 믿고 있어요. 이상 시인같은 높은 예술적 이상을 가진 남자예요.

집에 간단한 집기가 필요해도 예술작품 수준의 장인의 작품을 사야해요. 주방에서 쓰는 그릇은 물론 칼이며 작은 가구도, 이케아같은 데서 쌈직한 물건 사다가 조립이라도 하라고 시키면 무슨 고문 받는 것 같이 괴로워 해요. 이런 대중적인 물건을 내 공간에 들인다는 게 용납이 안 되나봐요.

머리 자르러 가도 저랑 아이는 동네 이발소에 가서 만원, 만 오천원 주고 자르는데 남편은 커트만 8만원 받는 곳에 가요. 예약 잡기도 힘든 곳인데 한 번 덜 자르더라도 장인의 손길에 머리칼을 맡기고 싶다네요. 그 때문에 커트할 시기를 놓친 남편 머리는 언제나 너저분.

시부모님은 누구보다 현실적이고 절약해서 아들 둘 공부시킨 옛날 시골 분들인데 어디서 저런 허영 덩어리가 나왔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하세요. 제가 볼 때 그 집 자식들은 부모님의 현실적인 세계관에 반항하는 태도가 좀 있었던 것 같아요. 시동생도 집도 절도 없을 때 수입차부터 샀고요. 

모처럼 오늘 저녁은 여보가 좀 차려보라고 시켰더니 세 시간 넘게 부엌을 뒤집어 엎고 요리를 하시는데 스페인 북부, 모로코 쪽 요리라네요. 맛있는지 없는지 알수가 없어요, 원래 어떤 맛인지 먹어본 사람이 없으니까요. 그냥 평범하게 고기 구워서 국 하나 끓여 먹으면 절대 안 되죠. 저렇게 살려니 누구보다 네가 젤 힘들겠다 싶은 측은지심으로 보통 넘어가는데요, 드라마에 보면 가끔 나오는 풀잎 이슬만 먹고 사는 비현실적 캐릭터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걸 매일 실감하고 살아요. 덕분에 저는 날이 갈수록 더 악착스런 소크라테스의 악처가 되고 있고요 ㅠㅠ 이런 건 이혼 사유 전혀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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