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싱싱한 제철 과일을 보면, 저같이 과일 싫어하는 사람도 한 입 깨어물고 싶은 충동이 일지 않나요. 봄에는 딸기, 각종 베리 종류, 여름엔 복숭아, 지금은 사과 등등이요.
제 남편은 영국사람인데 잘 익은 제철과일을 보면 일단 냄비에 넣고 끓여요. 뭉근하게 형태가 없어질 때까지 끓인 다음 설탕을 잔뜩 넣고 냉장고에 두고 먹어요. 이게 뭐하는 짓일까요. 제철과일이 나오면 바로 먹지 않고 파이를 만들어요. 밀가루와 버터를 엄청 많이 넣고요.
예전에야 냉장고가 없어서 오래 저장해두고 먹으려고 쨈도 만들고 파이도 굽고 했다지만 요새같이 유통이 빠르고 원활한데 왜 제철 과일을 조리할까요.
제가 몰랐던 서양 식재료 중 사람들이 좋아하는 루밥이라고 있어요. 생긴 건 샐러리같이 생겼는데 색이 빨갛게 되면 다 익은 거예요. 한 입 베어 먹어보면 시큼하기만 하고 별다른 향도 맛도 없어요. 서양 사람들은 루밥이 익으면 봄이 왔다고 생각해요. 제가 아는 집집 마다 뒷마당에 루밥을 키워요. 할머니 집에 갔더니 잘 익은 루밥을 바로 잘라서 설탕에 찍어 주셨다는 추억도 공유하고요. 그래도 뭐니뭐니해도 루밥은 푹 끓여서 설탕을 한 봉지 때려 넣고 쨈같이 만든다음 생크림이나 아이스크림에 곁들여 먹고 파이로도 만들어 먹어요. 이렇게 매력이 없는, 과일인지 채소인지도 애매한 식재료에 열광하는 음식문화, 저는 그 안에서 나고 자라질 않아서 그런지 동화가 안 되네요. 외국인들이 우리 음식 봐도 그런 거 있겠죠. 감나무를 볼때 느끼는 정감, 단감, 홍시, 곶감. 추석에 먹던 아삭한 배의 추억. 여기선 배는 단물에 졸여 먹든지 술 담궈 먹는 과일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겨울에는 귤. 언니랑 누가 많이 먹나 대결했는데 언니가 이기긴 했지만 손 발바닥이 다 주황색이 되어서 식겁했던 기억.
암튼 지난 주말에 동네 과수원에 가서 기가막히게 달고 신선한 사과, 아기 머리만한 큼직하고 단물이 흐르는 사과를 땀 뻘뻘 흘리며 한 박스 따왔는데, 직장 갔다 와보니 남편이 한 삼분의 일은 들통에 넣고 끓이고 있네요. 집안일 안하는 남자가 어찌 이리 부지런을 떨었답니까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