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이제 서서히 끝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 방금 전까지만 해도 갑자기 소나기가 퍼붓더니, 지금은 비가 그치고 공기가 눅눅하게 차올라 있어요. 그런데 신기한 건, 습기가 가득한데도 여름 한창처럼 숨 막히게 뜨겁진 않다는 거예요. 열기는 빠지고 대신 비 냄새랑 젖은 흙냄새가 공기 속에 섞여서, 뭔가 한 계절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여운 같은 게 느껴져요.
저는 숲이 보이는 창 앞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어요. 근데 이 책이 재미있는 건지 없는 건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한 페이지 한 페이지는 넘기는데, 마음이 푹 빠져드는 건 아니고, 그냥 시간 따라 흘러가는 기분이랄까. 그러다가 배가 고파져서 고구마를 하나 구워 먹었습니다.
집에 함께 사는 고양이가 있는데, 사람 나이로 치면 이제 딱 20대 중반쯤 되는 숙녀예요. 제가 먹다 남긴 고구마를 킁킁거리며 조금 맛을 보더니, 기대와는 달랐는지 금세 흥미를 접고는 창밖을 구경합니다. 제 고양이의 눈빛은 참 신비해요. 밝은 데서는 몰디브 바다 같은 옅은 민트빛이 도는 데다 흰빛이 섞여 있는데, 어두운 데서는 녹색으로 빛나거든요. 저는 개인적으로 몰디브 바다빛 같은 그 옅은 민트색이 더 마음에 들어요.
열린 창으로 까마귀 소리가 들리고, 이름 모를 작은 새들의 소리도 섞여 들려요. 매미도 아직 울긴 하는데, 한창 더위 속에서 요란하게 울던 그때랑은 달라요. 힘찬 기세는 사라지고 이제는 조금 서글프게 들리네요. 7년이나 땅속에서 버티다가 나와서 며칠 울고 생을 마감한다니, 그 짧고도 치열한 삶이 떠올라서 더 안쓰럽게 들리는지도 모르겠어요.
여름의 비 냄새와 습기가 남은 공기 속에서, 열기는 사라졌지만 계절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괜히 마음도 나른하고, 이 한적함이 뭐라 말할수없는 충족감을 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