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혼자 부안 내소사를 간 적이 몇 년 전이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타고 가다가 전나무숲길을 걷던 제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평일이었기에 도량은 한적했고, 고요했습니다.
수령이 오래 된 보호수 나무엔 소원이 씌여진 종이가 대롱대롱 메달려있었고,
극락보전에 들어가 삼배의 예를 올린 후 잠시 좌복에 앉아 좌정하고 있다가 나와서
극락보전을 탑돌이 하듯이 천천히 둘러보다가, 바로 맞은 편 요사채에 어느 스님이 쪼그리고 앉아서
풀을 메고 있었어요. 그리고 스님과 눈이 마주친 인연이 되어,
차 한 잔을 주신다고 그쪽으로 들어오라고 했었죠.
어디서 왔느냐? 서울에서 왔습니다.
어떻게 알고 왔느냐 등.
제 고인이 되신 조모님이 오랜 불자여서 절에 대한 예법은 익히 알고 있어서, 스님께
삼배의 예를 올리고 이런저런 차를 주셨습니다.
점심 때가 조금 지나서 혹시 점심은 먹었느냐.
가방에 준비 해 온 빵이 있다고 했는데, 냉장고에서 먹을 거를 챙겨주시고,
이런저런 차를 대접 받았네요. 전에는 스님들 뵈면 어떤 얘기를 할까 했는데
일상적인 대화였는데 그 안에 불법의 정수는 다 들어있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죠.
대화가 자연스러워서 편안했습니다.
당일치기라 시간이 촉박해서 일어섰는데 스님께서 염주와 그 내소사 멋진 그림이 그려진 작은 보조가방을 선물로 주셨어요. 나중에야 그 스님께서는 그 절의 주지스님이란 걸 인터넷을 통해서 알게 되었네요.
내소사는 여느 절과는 달리 단청이 안 되어 있어서 좋았어요. 오색찬란한 색이 없고 날 것 그대로의 나무 결이 살아있는 게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극락보전 꽃살무늬 문 등.
절을 감쏴고 있는 멋진 병풍 같은 산새도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스님께 차도 대접 받았고
제 인생의 절 부안 내소사였습니다.
내소사의 선승이셨던 해안 스님의 멋진 사람 시도 정말 좋아요.
고요한 달밤에 거문고를 안고 오는 벗이나
단소를 손에 쥐고 오는 친구가 있다면
구태여 줄을 골라 곡조를 아니 들어도 좋다.
맑은 새벽에 외로이 앉아 향(香)을 사르고
산창(山窓)으로 스며드는 솔바람을 듣는 사람이라면
구태여 불경을 아니 외워도 좋다.
봄 다 가는 날 떨어지는 꽃을 조문하고
귀촉도 울음을 귀에 담는 사람이라면
구태여 시(詩)를 쓰는 시인(詩人)이 아니라도 좋다.
아침 일찍 세수한 물로 화분을 적시며
난초 잎에 손질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구태여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아니라도 좋다.
구름을 찾아가다가 바랑을 베개하고
바위에서 한가히 잠든 스님을 보거든
아예 도(道)라는 속된 말을 묻지 않아도 좋다.
야점사양(野店斜陽)에 길가다 술(酒)을 사는 사람을 만나거든
어디로 가는 나그네인가 다정히 인사하고
아예 가고 오는 세상 시름일랑 묻지 않아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