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텃밭에 다른거 심고싶어서
몇년간 부추만 있던곳 일부를 갈아엎었는데요
그냥 삽으로 팠다가 깜놀했어요
부추뿌리가 엄청나게 깊네요
뿌리도 엄청 깊고 마구 엉켜있고
단단하게 박혀 있기가 이루말할수없어요
분명 위에 눈으로보이는 부추 풀들은
보기엔 매우 연약하거든요
갸늘갸늘 야리야리 합니다..
아 뿌리가ㅈ이 정도로 깊고 단단하니
땅 속 영양분을 많이 빨아오겠구나 싶고
아주 탄탄한 뿌리들 보고는 몸에 진짜 좋겠다 싶어요
부추들 있는 곳엔 잡초도 얼씬도 못하네요
이게 사오년 된 듯 한데
방치만 되어 건드려본적이 없어요
그야 말로 자연 그 자체.
뿌리가 이리 탄탄하니
겨울에 위에 풀이 말라도
봄에 새싹 나는게 넘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머리 빡빡 깍는다고 머리털 안나지 않듯
부추도 풀들도 그렇겠구나
뿌리가 깊으면 한겨울이고 뭐고 끄떡도안하는구나
눈으로 보이지 않는곳이 중요하구나
보이는건 암것도 아니구나..
식물도 이렇듯 사람도 마찬가지겠구나
가족과 주변인들과 유대관계가 깊으면
인생의 한겨울이 와도 끄떡 없겠구나..
뭐 요런 소소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한편 밭이 조금 엉망인 곳은
커다란 ㄱ자 삽으로 땅에다
아주 힘껏 온 힘을 다하여 팍팍 내리치는데
묘한 쾌감도 느껴졌어요
강하게 힘을 주어 내리칠때마다
땅이 박살나듯 파헤쳐지면서
깊은 뿌리들 질기고 단단한 뿌리들 뒤엉킨 것이 드러나
그것들이 잘라지고 난도질될때마다
마치 오래된 뿌리 깊은 제 내면의
엉클어진 묵은 감정들이 파쇄되는 듯한 느낌
아주 근본이 뿌리뽑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신기했어요
내리쳐 박살나는건 땅인데 질긴 풀뿌리들인데
내 마음이 박살나는것 같아서요
가슴 속 단단한 응어리가 풀어지는 느낌.
또 그렇게 힘쓴 얼마 후에
포슬포슬 통풍도 잘되는 듯한
그런 건강한 갈색 땅을 바라보노라면
땅속 깊은곳까지 고르게 정돈되어있는 제가 일군 그 땅을 바라보노라면
마음 속 깊은 곳 까지
제 맘이 고르게 평온해진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어요
엉킨 마음이 녹아지고 그자리에 평안이 대신 자리한 느낌
어둠덩어리가 빛을 받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반짝이는 햇살만 남은 느낌
힘껏 땅을 내리치면서
삽으로 손으로 흙을 만지며
때론 무릎으로 땅위를 기어다니다가
한줄기 바람에 잠시 땅위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이런저런 제맘대로식 깨달음을 얻고 있습니다.
아주 작은 땅이라도
이렇게 큰 기쁨을 주네요
문득 마술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땅에다 물만 주는데
어떻게 저런 씨앗 하나가 풀한포기가 되는거지?
물만 주었을 뿐인데
어떻게 저리 총천연색 아름다운 꽃이 되고
꿀같은 과즙이 흐르는 탐스런 열매가 되는거지?
너무나 신기하고 오묘한 마술같아요
저 많은 환상적인 색들과 질감들은
그리고 저 생기는
다 어디서 오는 걸까요?
앗 쓰다보니
또 샛길로 흘렀네요 ㅎㅎ
오늘 새벽시장 나와서
종묘 몇개 샀어요
호박 오이 상추 케일
방울토마토 참외 애플수박 ..
콧구멍만한 텃밭에 너무 산다고
말리셔서 더 못 샀네요
한아름 안고 돌아가는길에
아침먹고 까페서 모닝 차한잔 마시면서
요리 잠시 사색에 잠겨봅니다
심고 자라고 꽃피고 열매맺고..
상상하니 넘 설레어요
매일 매일 조금씩 자라는거 볼때마다
행복할거 같아요
오백원 천원.. 종묘값에
이만한 기쁨이라니요
기쁨의 양으로 보나 시간으로보다
이게 바로 가성비 끝판왕 아닌가 싶습니다ㅎㅎ
아 언능가서 심어야겠어요
도시서 나고 자라
자연엔 일자무식이었던 도시촌년.
이렇게 조금씩 배워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