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우기 힘든 자식이었어요.
아기 때는 입이 짧고 병치레가 잦았어요. 약 한번 먹이려면 반항이 심해서 제 몸이 땀으로 젖을 정도로 별난 아이였지만그래도 그 때는 그저 안스럽고 애처로운 마음이었죠. 엄마 껌딱지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라 초등 고학년까지도 잘 때 옆에 있어줘야 했어요.
사춘기가 일찍 오더니 피마르는 경험이 반복됐어요. 남편복 없는 여자 자식복도 없다더니 내가 그렇구나 싶었어요. 그 시절 퇴근길에 집에 들어가기 싫어 집 앞 놀이터에서 울다가 들어간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어요. 자식은 엇나가고 말을 안듣는데 남편은 제가 잘못 키워 그렇다고 폭언을 퍼부으니 딱 죽고 싶어 한밤중에 아파트 옥상 올라간 적도 있었습니다. 애 키울 때 엄하게 키웠지만 욕하거나 체벌 한번 안했고 공부 강요 전혀 안했습니다. 부모가 공부 잘했지만 너는 다른 거 하고 싶으면 운동이든 뭐든 지원하겠다고 했어요. 공부는 하기 싫은데 다른 것도 하기 싫고 좋은 대학은 가고 싶다더니 삼수해서 인서울 하고는 스카이 못가서 우울증이 왔다더군요. 제 속마음으로는 그 고등 성적(학군지 일반고 최하위권)으로 삼수해서 인서울 한 것도 기적이다 싶었지만 내색 안하고 다독였습니다. 학교 이름이 아니라 실력으로 승부하는 시대라고요.
속썩이던 자식 대학 가면 철든다더니 예외가 있네요. 흥청망청 쓰지는 못하게 했어도 용돈이며 지원 주변 친구들보다 넉넉하게 해준 것 본인도 알아요. 그런데도 감사하거나 만족하는 마음이 전혀 없고 불만 가득합니다. 자식이라도 보고 싶고 예쁜 생각이 안들고 집에 오면 불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