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사람에게 받은 상처,사람에게 위로 받기

 
저희 아버지는 말도 못 하게 게으른 분이었어요.
몸이 굼뜨고 걱정은 많은데 성격은 급해서
옆에 있는 사람까지 불안하게 하는.
 
아버지는 자식을,특히 저를  수족처럼 부리셨습니다.
 
예를들면 이런 식이죠.
 
당신이 마당까지 가기 싫으니
저에게 방까지 쇠 세숫대를 가져오게 해요.그리곤 좁디 좁은 방에서 아버지가 비누! 하면 비누를,
면도기! 하면 면도기를  대령하게 했어요.방은 금새 물 천지가 돼고 뒷치닥 거리도 하나 가득이에요.
그걸 세숫대가 무거워 물을 철렁철렁 쏟고 다닐 때부터 저나 동생이 해야 했어요.큰아들은 귀했고 막내도 남자였거든요.
세수가 끝나면 옷도 당신 혼자 안 입으셨어요.팬티만 당신이 옆으로 돌아서 입곤(다 보였지만) 양말도 신겨주고 바지도 입혀주고..그것도 너희들은 시집 가면 끝이야! 하는 소릴 들어가면서요.-부부 사이가 안 좋아서 딸한테라도 가장 대접을 받고 싶었던 것 같아요.
 
평생 백수셨죠.
남의 집에 뺏길 가시나를 셋 씩이나 키워야 된다고 한탄하던  아버지는 내내 아프셨어요.저는 늘 엄마 대신 미음을 끓였고 아버지의 손 발이었으며 아버지의 욕받이였어요.
돌아가실 때까지 택시 안 잡고 제 등-전 그때 고3이었어요.몸무게가 40kg이 안 됐을거예요-에 업혀서 병원 가면 된다고 고집을 부리다 결국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아버지에게는 미안하지만 저 앞의 태산 하나가 제 어깨에서 내려오는 날들이 찾아온 거지요.
 
 
평생 아프고 화만 냈던 아버지 때문에
저는 
<안 아픈 사람>하고 결혼하고 싶었어요.
맨날 시집,시집 하셔서 시집을 안 가면 안 되는 줄 알았던 저는
그렇게 가야한다면 
아버지랑 다른 남자,
학벌이고 직업이고를 떠나서 
무조건 안 아픈 남자와 결혼하고 싶었습니다.
옷을 자기가 입고 세숫대를 자기가 들 수 있는 남자를요.
 
그렇게 돈 500만 원으로 시집 갔어요.
처음 선보는 자리에서
장남인 남자가 결혼하게 되면 식구들과 같이 살아야한다 했지만  그게 뭐라고요.집에 환자는 없다잖아요.
남자 학벌도 꽝이지만 그게 뭐라고요 시꺼멓게 생긴게  체격이 좋잖아요.
나중에 보니 남편은 형광등 간다고 저를 엎드리게하고 제 등 위에 올라서던 아버지랑 다르게 
자기 혼자 등도 갈 줄 알더라고요.
 
게다가
같이 살게 된 시어머니는 
우리 엄마한테 들은 시어머니의 이미지랑 다르게 
세상 여성스런 분이셨어요.
나중에 손주 입힌다고 배냇 저고리를 조물조물 만들기도 하시고
제가 짠 반찬 안 좋아한다고 가지 나물도 따로 만들어주셨어요.신기하지요.남이 키운 남의 집 딸에게 어쩜 그렇게 잘 하시는지요.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마루 빗자루질할 때 
옆에서 다른 일 만들지 않고 쓰레받기를 들고 계셨던 분이었어요.
친정 엄마는 국민학생 애기한테 하교 후 당신 일터에 와서 막내를 집에 업고 가라 시키셨는데
시어머니는 
외출하는 며느리가 잘 걸어가는지 본다고 
안 보일 때까지 보시던 분이셨습니다.
 
이젠 
 
모두 옛날 얘기가 되었네요.
살구가 나왔다며 제일 싱싱하고 예쁜 거 골라 며느리 먼저 주시던 어머니,
무엇보다 내가 낳은 아기를 나보다 더 좋아하셨던 어머니....
 
 
그녀도 먼 나라에 가셨습니다.
 
 
음...
 
 
살아보니 친정에서 아버지랑 산 게 이십 년 쯤.
시부모님과 남편과 지금까지 산 시간이 삼십 년 쯤 되었네요.
나름 선방한 걸까요?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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