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좋은 부모란...

제가 외동딸이에요.

엄마는 이게 당신에게든 제게든 큰 핸디캡이라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도 남들에게 예의 바르게 대하고 남들 입에 오르내릴 일 하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치셨어요. 미취학 어린애가 남들 입에 오르내릴 일이 뭐가 있었을까 문득 궁금합니다. 

저는 기질적으로 범생이고 집순이라 무난하게 성장했어요. 공부는 뛰어나게 잘했고 교우관계도 괜찮은 편이었고요. 그런데도 엄마는 무슨 강박처럼 예의와 됨됨이를 강조하셨어요. 엄마는 당신이 바르고 정의롭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셨고 실제로도 그런 분 맞아요. 

제가 대학 시험 보러 서울로 왔을 때 휴대용 가스렌지와 쌀, 반찬거리를 이고지고 오셔서 기어이 그 새벽에 밥을 해서 먹여보내셨어요. 사실 긴장하면 복통이 심해 시험날 아침밥 안먹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그 말이 통할 것 같지 않으니 꾸역꾸역 먹었어요. 

그동안 살면서 힘든 일을 단 한번도 엄마에게 얘기해본 적이 없어요. 말했을 때 당신의 걱정이 내 힘듬보다 더 커보일 게 뻔해서 그것까지 감당하는게 너무 힘들어질 것 같아서요. 결정적으로 잊을 수 없는 게, 결혼 전날, 우리 집안에 이혼은 없다, 고 하셨던 말씀이에요. 관식이처럼 아빠가 뒤에 있으니 수틀리면 빠꾸까진 아니라도 그런 식으로 배수진을 치시는데 그 날 이후 아무리 힘들어도 제가 엄마한테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요? 

항상 나는 좋은 엄마다, 이렇게 너를 위한다, 강요받는 느낌이 있어요. 물론 좋은 엄마 맞고 제게 바라는 거 없으시고 매우 독립적이신 것도 맞는데, 내가 자식들 폐 안끼치려고 이렇게 건강 관리 열심히 하고 친구들 만나며 즐겁게 산다고...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른데 저런 말씀 들으면 내가 더 신경써야 하나 오히려 부담감이 생깁니다. 당신이 자식 걱정 안끼치는 좋은 엄마니 저도 부모 걱정 안끼치는 자식이어야 하고요. 

저는 저를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남편과 살아요. 무슨 말을 하려고 하면 시작하기도 전에 물건 치우듯 손으로 저리 가라는 제스처를 취합니다. 꼭 필요한 말을 어쩔 수 없이 해도 짜증과 폭언이 이어지니 제가 교통사고 났을 때도 마지막까지 숨기려고 했을 정도에요. 병원에서 깁스 하라는 걸 조심해서 움직이겠다고 하고 집에 와서 절뚝거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는데도 표가 나니 첫 마디가 왜 재수없게 절뚝거리냐고 한 사람이에요. 교통사고 났다고 하니 눈을 어따두고 운전을 했냐고 해서 지나가는데 공사장에서 돌이 날아와 사고 났다 하니 잘 보고 피했어야지 멍청하게 사고가 났다는 식이에요. 그런 폭언을 들으면서도 제대로 대응도 못하고 그렇다고 속상한 마음을 풀지도 못한게, 매사 참고 순응하라는 엄마의 가르침 때문인가 터무니없는 탓을 하게 됩니다. 

 

내 삶에서 무조건 내 편이라고 느낀 사람이, 순간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참 서글프고 허무한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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