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젊어서 옷치레를 어마어마하게 했어요.
이제 나이 들어 살 찌고 체형도 변하니 옷 입는 재미도 없고
직장 그만두고 나니 입고 갈 때도 없어서
제 옷은 생존에 필요한 필수템 개념으로 어쩌다 사고
젊어서 쌓은 노하우와 안목으로 남편 옷 사입히는
재미로 살아요.
저랑 연애할때 남편 패션감각은 딱 동네아저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어요.
간혹가다 아웃도어도 간간히 섞어서 입어 주시는
환장할 수준이였지만 전 왠지 남편을 보며
하얀 도화지 같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양말 하나도 고를 줄 모르는 아이 붙잡고
가르치는 기분이랄까요.
요즘 저와 남편의 최애 브랜드에 가자마자
디피되어있던 루즈한 핸드메이드 코트가 눈에 뙇!!!
코트라면 몸에 핏되고 단추 처음부터 끝까지 잠궈주고
구두 신어줘야하는걸로 알고 있는 남편 취향으론
저런 헐랭한 코트를 어찌 입어야할지 난감해하길래
이런건 하이넥 스니커즈에 후드티랑 입어도 되고
스웻셔츠랑 대충 입고 툭 걸치듯
단추 열어주라고 했더니 동공지진이 ㅋㅋㅋㅋ
아울렛이라 60%세일해도 50만원이 넘는다며
숨넘어가는 소리 하길래
여보! 그냥 이거 사고 오늘 점심은 집에 가서
라면 끓여먹으면 되지!! 했더니 여자 직원분이
풉!! 하고 터지심.
남편이 이건 일주일 내내 라면 먹어도 못 사겠는데
앓는 소리 하며 눈치 보길래
내가 울집 라면 몽땅 당근에 내다 팔아서라도
이건 사주겠다고 큰소리쳐서 겨우 샀어요.
자기도 내심 마음에 들었는지 같이 디피되어 있던
울과 패딩으로 된 겁나 예쁜 목도리도 자꾸 둘러보길래
그것도 사라도 했더니
블랙진도 한 벌 골라서 들고 오더라구요 ㅋㅋ
결론은 남편옷만 7벌 사고 제꺼는 모자 하나 ㅋㅋㅋㅋ
근데 왤케 내 옷 산거보다 더 좋을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전 젊고 제일 예쁠때 정말 원없이 입고 즐겼는데
남편의 젊은 시절은 너무 초라했더라구요 ㅜㅜ
그래서 자기 대학때 사진은 저 보여주는거 싫어해요.
우리가 대학생때 소개팅으로 만났으면
자기를 쳐다보지도 않고 가버렸을꺼라는 얘기 할 때
정말 속상했어요.
50대 중반이 된 지금 누리지 못하고 살았던 세월에 대한
회한이 밀려오곤 하는걸 잘 알고 있기에 정말 더 늦기전에
완전 스타일리쉬하고 세련된 중년 아저씨로 만들어주는
재미가 엄청 나고 본인도 디게 좋아해요 ㅎㅎ
근데 저의 이런 노력에도 탈모는 어쩔꺼니 ㅋㅋㅋㅋㅋ
집에 돌아온지 1시간이 넘었는데 아직까지
이거 저거 입어보며 이건 어때? 이거 여기다 입어도 되지?
이럼서 침대에 쓰러져 있는 제게 와서 보여주느라
바쁘시네요.
그래 오늘 저녁은 옷 실컷 사서 기운 넘치는
네가 쩜 해라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