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70년대 산골의 겨울이 그리워요

새해의 첫날인데

하필이면..

예전의 일들이 많이 떠오르고 그 시절이 울컥하게 그립네요. 

 

어린 시절은 꽤 길었던  것 같은데 지금 돌이켜보면 기억을 재생할 수 있는 여섯살부터 읍내로 이사를 가기 전인 아홉살까지가 딱 그리움의 시절이네요.

고작 4년 정도의 시간이 이렇게  평생을 지배하다니...

 그 시절의 풍경, 냄새, 맛...

 

저는 강원도 첩첩산골에서 태어나 살았어요.

전기도 없었으니 문명과는 거리가 멀었죠.

제가 살던 곳은 겨울이 참 추운 고장이었어요.

모든 아이들이 찬바람때문에 코를 흘렸고, 손등은 터져 있었고, 씻지않아서 목에 때가 그대로  보였어요.

아이들은 그래도 매일 나가서 눈속에 뒹굴며 비닐로 눈썰매를 타고 얼음판에서 얼음썰매를 탔어요. 손발은 어찌나 시렵던지...

 

농촌의 겨울은 한가하고 여유있고 하루하루 별일없이 지나갔어요.

 

엄마는 이 즈음이면 엿을 고았어요. 옥수수로 고운 가루를 만들어 엿기름을 넣고 오래도록 끓여요.

가마솥 한가득이었던 옥수수물은 오래오래 끓고 나면 다 졸아서 갈색의 끈적한 조청이 되어서 그것을 평평한 바닥에 부어서 식히면 엿이 되었죠.

그리고 일부는 튀겨온 쌀이나 옥수수를 뭉쳐서 과자도 만들고요. 

그동안 아궁이에 불을 계속 때서 방바닥은 앉아있을 수 없을 만큼 뜨거워지고 오랜만의 열기로 아이들 볼따구도 발그스름해지구요. 집에서 엿을 고으면 마음도 말랑말랑해지면서 부자가 된 것같이 행복해지곤 했어요.

 

엿을 고으고 나면 이제 두부를 만들고 설을 열흘쯤 앞두게 되면 그토록 기다리던 떡을 해요. 우리집은 큰집에 가서 설을 쇠기 때문에 순전히 가족들이 먹기 위한 떡이었어요.

 

쌀가루를 시루에 쪄서 김이 펄펄 나는 떡을 떡판에 놓고 떡매로 오랫동안 쳐서 떡을 만듭니다. 떡매로 치는 일은 힘이 많이 드는 일이라 일이 시작될 쯤에 동네 청년들이 하나둘 모여들었어요. 그땐 동네에 청년들이 참 많았었죠. 다 치면 엄마가 떡살로 무늬를 새기며 떡을 만들었는데 어린 마음에 그 무늬는 황홀하게 예뻤어요.

 

먹을게 귀한 산골의 아이들은 편식이란 건 모르고 엿이나 떡은 최고의 음식이었죠.

엿이나 떡을 하면 이제 집집이 배달을 해야하는데 그건 꽤나 즐거운 일이었어요.

엄마는 항상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임무를 같이 줬는데 그 말을  전했는지를 꼭 확인했기 때문에 항상 명심해야 했어요.

일테면 '이번에는 떡을 조금밖에 못해서 많이 못드린대요' '옥수수가 잘 안되서 엿이 맛있게 안됐대요'등 .. 이런 내용들이었죠.

 

그런데 어느 집이나 같은 시기에 똑같은 음식을 했기때문에 나중에 보면 우리집 떡상자나 엿상자엔 우리집 건 없고 마을의 다른집에서 온 것들로 가득차 있었어요. 같지만 맛이 다다른 마을 집집의 음식들..

 

자고 일어나면 친구들이 놀자고 벌써 찾아오던 단조롭지만 지루하지 않은 하루하루.

방학숙제에 대한 약간의 걱정 외엔 어떤 근심거리도 없고 매일 칼바람을 맞으며 놀아도 감기조차 걸리지 않았어요.

 

저녁이면 구들을 데워 따뜻해진 아랫목에서 가족과 둘러앉아 이른 저녁을 먹으며 그런 날들이 영원할 줄 알았어요.

 

돌이켜보면 아무 것도 없고 아무 것도 아닌데 옛날은 왜 그리 그리울까요..

 

저는 아무래도 도시를 떠나 산골에 가서 살아야할 것 같아요. 

올해도 그런 소망을 품고  도시살이에서 또 버텨보렵니다.

 

 

최근 많이 읽은 글

(주)한마루 L&C 대표이사 김혜경.
copyright © 2002-2018 82cook.com.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