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천주교)오늘 강론

대림 제2주일(인권 주일, 사회교리 주간)
바룩 5,1-9; 필리 1,4-6.8-11; 루카 3,1-6

 

 

+ 찬미 예수님

지난 한 주간 안녕하셨어요?

저는 안녕 못했는데요, ‘안녕’이라는 말을 찾아보니까, ‘편안할 안’자에 ‘편안할 녕’자를 써서, ‘아무 탈이나 걱정이 없이 편안함’이라는 뜻이라고 하는데요, 지난 한 주간, 걱정도 많았고 편안하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신학교에서 2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가서, 경북 영천에서 군 복무를 했습니다. 부대 안에 교회가 있었는데, 부대는 그 교회를 관리할 군종병을 오랫동안 청했고, 주특기가 군종이었던 제가 그리로 배치되었습니다. 

 

 

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치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던 야간열차를 타고, 다음 날 아침 자대에 도착했습니다. 내무반에서 차려자세로 대기하고 있는데, 군수 과장이라는 분이 저를 부르셨습니다. 열심한 개신교 신자셨던 군수 과장님은 저를 흡족하게 바라보시더니, “그래, 신학교 다니다 왔다지? 어느 학교 다니다 왔나?”하고 물으셨습니다. “예! 가톨릭대학교 다니다 왔습니다.”라고 말씀드리니, 그분은 책상을 내리치면서 “뭐? 그럼, 너 천주교야?” 하시더니, 욕설이 섞인 혼잣말을 한참 하시다가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차피 지금 군종병 다시 청해봐야 한참 뒤에 올 테니까, 네가 그냥 교회 관리를 해라. 못하겠으면 너를 우리 부대 옆에 있는 특공 여단으로 전출시키겠다.” 

개신교 군종병을 하고 제대하면 아무래도 신학교에 복학할 때 지장이 있을 것 같아서 저는 그냥 특공 여단으로 보내 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같은 훈련소를 나온 동기 세 명이 그 특공 여단으로 배치받았는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중 두 명이 훈련 중에 다쳐서 의가사 제대를 하고야 말았습니다

 

 

 

어쨌든 저는 그리로 전출 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전출은 가지 않았고, 인사행정병으로 근무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대위에서 소령으로 진급하기 직전에 거치는 보직이 인사장교였기 때문에, 인사장교님들은 일거리를 많이 만드셨습니다. 주로 퇴근하시면서 일거리를 주셨기 때문에 밤새 워드 프로세서 작업을 하는 날이 많았고, 항상 잠이 부족했습니다.

 

 

 

군대에는 ‘대민 지원’이라는 것이 있는데요, 부대 밖으로 나가서 주민들을 돕는 활동입니다. 추수 때나 양파 수확시기가 되면 대민 지원을 나갔는데, 저는 지원자를 선발할 때마다 항상 자원했습니다. 사무실 일을 벗어나는 기회이기도 했고, 오가는 길에 트럭 짐칸에서 잠을 잘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사 장교님께 붙잡히지 않고 운 좋게 대민 지원을 나가게 되면 정말 그곳이 천국이었습니다. 주민들은 저희를 열렬히 환영해 주셨고, 점심때 나눠 주시는 밥은 정말 꿀맛 같았습니다.  

 

 

 

지난 화요일 밤, 대민 지원을 나갔던 기억이 자꾸만 떠올랐습니다. 지난 화요일은 밤 10시 30분 전에 잠드신 분들과 잠을 못 주무신 분들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밤 10시 30분에 계엄령이 선포되었습니다. 계엄령이 무엇일까요?

군인이, 민간인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인을 상대로 총구를 겨눈다는 뜻입니다. 나라를 지키라는 영장을 받고 징집되어,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는 군인이, 국민들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을 상대로 총을 겨눈다는 것입니다. 

 

제가 만일 정말로 특공 여단으로 전출되어, 만에 하나라도 계엄군이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 일입니다. 

계엄령이 선포된 직후 어느 아버지와 군인인 아들의 전화 통화 내용이 인터넷에 올라와 있어서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소대장인 듯한 아들에게 전화를 해서 말합니다. “계엄령 내렸어, 계엄령, 지금. 너 잘 들어. 너 잘 들어야 돼. 너 목숨 지키는 게 제일 중요하고” 이때부터 아버지는 울먹이기 시작합니다. “두 번째는, 민간인을 공격하거나 살상하는 행위를 절대 하면 안 돼, 알았어? 니 소대원들 잘 지키고, 알았어? 니 목숨 지키는 게 제일 중요한 문제야, 알았어? 너 계엄 시에 군대가 얼마나 무서운 건지 알지? 너 실탄 지급 받고 애들 다뤄야 돼. 애들 잘 다루고 니 소대원들…. 무엇보다 니 목숨 잘 챙기고 절대로 민간인을 해치는 행위 하지마. 엄마한테 빨리 전화해 지금. 엄마 걱정 안 하게 말 잘하고.” 

 

아버지는 이 통화가 아들과의 마지막 통화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녹음을 했다고 합니다. 장교이고 소대장인 아들에게 “알았어?”를 연발하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대한민국 모든 부모님의 염려와 걱정이 들어 있습니다. ‘어머니’가 아니라 ‘엄마한테 빨리 전화하라’는 말에, 부모님의 눈에 늘 어려 보이기만 했을 아들이 얼마나 안쓰럽고, 얼마나 걱정이 되었을까 싶어 듣는 저도 눈물이 났습니다. 자식을 군대에 보낸, 그리고 앞으로 보내야 하는 아빠, 엄마의 마음이 다 그렇지 않을까요? 

 

 

 

 

계엄령은 지나가 버린 헤프닝이 아니라 45년 만에 재현된 아픔이고 상처입니다. 이 상처가 치유되기 위해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요? 우리는 이 상처의 치유에 협력하고 하느님 아버지의 정의와 평화가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세상을 치유하러 오시는 예수님의 일에 협력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인권 주일이고 오늘부터 사회교리 주간이 시작됩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1982년부터 대림 제2주일을 ‘인권 주일’로, 2011년부터 대림 제2주간을 ‘사회교리 주간’으로 정했습니다.

 

 

 

‘사회교리’는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이라고도 부르는데요, 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뜻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2014년에 우리나라를 방문하셨을 때, 한국 주교님들과 만나신 자리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연대는, 교회의 풍부한 유산인 사회교리를 바탕으로 한 강론과 교리 교육을 통하여 신자들의 정신과 마음에 스며들어야 하고, 교회 생활의 모든 측면에 반영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사실 구약의 예언자들 모두 정치인인 왕들에게 회개를 선포하였고, 십계명 역시 사회 교리적 측면이 있기에, 사회교리의 역사는 구약시대부터 시작되었지만, 독립된 분야로 다루어진 것은 1891년에 레오 13세 교황님께서 회칙 ‘새로운 사태’를 선포하신 이후라 보고 있습니다. 

이후 2015년 회칙 ‘찬미받으소서’에 이르기까지, 공의회 문헌은 물론 교황님께서 반포하신 문헌들 모두 사회교리에 포함됩니다.

 

 

이것은, 가톨릭 교리가 업데이트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운전할 때 사용하는 네비게이션은, 제때 업데이트하지 않으면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교황님께서 반포하시는 문헌과 주교회의에서 발표하는 담화를 네비게이션으로 삼아 구원의 길을 안전하게 잘 분별하여 따라가야 합니다. 

 

 

 

오늘 제2독서인 필리피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기도하는 것은, 여러분의 사랑이 지식과 온갖 이해로 더욱더 풍부해져 무엇이 옳은지 분별할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지식보다 사랑이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바오로 사도는 ‘사랑’이 ‘지식과 이해’로 풍부해져야 한다고, 그래서 무엇이 옳은지 분별할 줄 알게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분별없는 사랑이 가장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말하는 지식은 이론적인 지식이 아니라 실천적인 지식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 안에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올바로 분별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교회 내부의 일에만 전념하고 세상일에는 관심 갖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역대 교황님들 모두 이런 생각을 경계하라고 하십니다. 

 

 

성 요한 23세 교황님은 “어느 누구도 자기 영혼의 완성과 현세의 일, 이 두 가지가 서로 배치되어 양립할 수 없는 것이라는 그릇된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성령께서 모든 사람 안에서 활동하고 계심을 믿는 것은, 성령께서 모든 인간의 상황과 모든 사회적 관계에 파고 들어가려 하신다는 것을 깨닫는다는 의미”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제1독서인 바룩서는 “하느님께서 높은 산과 오래된 언덕은 모두 낮아지고 골짜기는 메워져 평지가 되라고 명령하셨다.”고 전합니다. 

 

오늘 복음인 루카 복음은 “골짜기는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라.”라는 이사야서의 말씀이 구체적인 역사의 한가운데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선포합니다. 

 

하느님께서 골짜기가 메워지고 산과 언덕이 낮아지라고 명령하십니다. 내 영혼의 좌절과 절망이라는 골짜기가 메워지고, 교만과 아집이라는 산과 언덕이 낮아지기를 기도드립니다. 

 

또한 이 사회의, 세상의 아픔과 상처의 골짜기가 메워지고, 하느님께 대한 무서운 저항의 산과, 하느님의 정의를 거스르는 교만한 언덕이 낮아지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협력하라고 부르심 받은 사람들입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라.ㅡㅡㅡ김유정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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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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