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n.news.naver.com/article/310/0000120932
이러한 옹호론이 나오는 것 자체가 한국 사회가 양육의 책임을 오롯이 여성에게만 지우고 있다는 현실을 반영하는 듯해 씁쓸했다. 한 매체는 정씨가 '경제적 책임 만을 질 것'이라는 입장이라고 보도했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정씨는 일부 네티즌들의 지적처럼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형성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전통적 의미의 혼외자'를 만든 것이다.
아이에 대한 책임은 단순히 양육비 뿐만이 아니라 아이가 성인이 되기까지의 모든 보살핌 과정을 포괄하는 것이다. 부(父)는 양육비만 내면 모든 역할을 다한 것인가? 이는 결국 주된 양육의 책임을 오롯이 여성에 귀속된다는 말이다. 모(母) 역시 양육비를 부담할 것이며, 임신·출산 기간도 모가 모두 책임진 상태다.
정씨는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이 잘못이 아니라, 양육비만을 '책임'으로 언급하며 상대 여성에게 '육아 독박'을 씌운 것이 잘못된 것이다. 현재까지 보도를 기반으로 가치판단을 하면 정씨는 아이가 태어난 지 8개월이 지난 시점에도 양육 방식에 대한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심지어 우리나라의 법정 양육비 책정 금액은 한 아이를 기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는 그가 얼마만큼의 양육비를 부담하는 지조차 아직 알 수 없다.
정씨에 대한 옹호를 위해 각종 개념이 오용되는 현상도 우려스럽다. '새로운 형태의 가족'은 남녀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정상가족'에서 배제된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한 개념이다. 보살핌의 책임을 거부한 사람을 위해 정상가족의 탈피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정상가족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겪은 피해를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임신중단(낙태)을 택하지 않은 여성이 허황된 요구를 하는 것처럼 비난하는 사회 역시 문제적이다. 애초에 피임을 했으면 임신중단을 하지 않은 것을 문제 삼을 이유도 없다. 임신중단권 논의는 정씨의 사례처럼 여성이 출산할 시 그 피해를 여성이 감당해야 하는 경우가 너무 잦다보니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이뤄지는 것이다. 왜 이러한 임신중단권 증진 요구들을 가해 남성을 위한 것으로 전유하는가.
불과 최근까지도 어떤 여성 연예인은 이혼 이후 아이들의 주된 양육자가 아니라는 사실 만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국회 입법조사처의 지난 3월 보고서에 따르면 양육비 소송을 통한 양육비 전액 지급률은 불과 4.6%에 불과하다. 이러한 대한민국 상황에서 진짜 숨이 막히는 것은, 혼인 외 출산을 존중하겠다며 양육 책임을 지지 않는 친부에게 면죄부를 주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