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몸을 움직이기 어려울 때 갈 수 있는 시설 경험기

좋은 내용이라 퍼왓습니다.

바쁘시면 굵은 글씨만 읽으셔도 됩니다.

 

글쓴이 : 벨기에 자립지원주택-어시스티드 리빙 입주자 변재원
 
1. 넷플릭스 신작 가운데 <스파이가 된 남자>라는 드라마가 있다.
오피스, 브루클린 99, 굿플레이스 등을 쓴 마이클 슈어가 굿플레이스 몇몇 출연진과 오랜만에 합을 맞추어 만든 드라마다. 줄거리는 아내 사별 후 무기력해진 남성이 우연히 탐정 사무소에 취업하여 도난물품을 찾기 위해 '어시스티드 리빙'에 잠입하는 내용이다.
 
2. 드라마는 그 어떤 노인도 '시설'에 들어가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 점에서 노인들이 가장 경계하는 건 치매인데, 치매에 걸릴 경우 더 이상 '어시스티드 리빙'에 머물지 못하고 별도의 시설로 입원조치 되기 때문이다.
 
3. 한국어 자막에 버젓이 "실버타운"이라고 써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계속해서 '어시스티드 리빙'이라고 쓰는 이유는 탈시설에 대한 상상력의 빈곤함을 지적하기 위해서다.
 
나는 벨기에 어시스티드 리빙 입주자다.
드라마 속 주인공이 잠입한 샌프란시스코 '어시스티드 리빙'과 마찬가지로, 벨기에 루벤의 '어시스티드 리빙'에서 살고 있다. (내가 사는 벨기에의 어시스티드 리빙은 미국처럼 럭셔리한 곳은 아니지만) 한국의 탈시설 장애인권활동가들이 추진하는 자립지원주택과 유사한 구조다.
장애인을 비롯한 신체적 불편함을 가진 이들이 비장애인과 함께 머물고, 자유로이 출입할 수 있고, 내 명의로 계약한 개별적인 방을 가지고 있는 곳은 집단 거주시설도, 실버타운도 아니다.
 
4. 실버타운이라는 단어는 입주민을 '노인'으로 한정시킬 뿐만 아니라, 경제적 여유를 전제로 입주하는 곳을 지칭하는 문화적 용어다.
다시 말해, 부동산 또는 연금이 충분한 노인들이 집에서 사는 게 불편해서 대안으로 선택하는 안정적인 주거처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곳에 입주할 수 없는 노인들은 요양원, 재활병원, 요양병원으로 차례차례 밀려난다.
 
5. 한국에서 탈시설 운동을 할 때면 늘 '대안'이 없지 않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정말 그럴까?
벨기에에서의 지금 나의 삶은 무엇일까.
나는 혼자서 무엇도 들 수 없다. 휠체어로 출입도 자유롭지 않다.
플래미쉬를 하지 못해 공과금을 내지도 못하고, 아직 내 명의의 휴대폰과 계좌도 없다.
요리도 제대로 못한다.
무엇하나 혼자 할 줄 모르지만, 나는 격리되지 않은 채 어시스티드 리빙에 입주한 다양한 입주민의 도움을 통해 살아가고 있다. 
모든 입주민 친구들이 도와준다. 서로의 스케줄에 부담이 가지 않도록 3주마다 1번씩 회의를 하고, 매주 나의 장보기와 청소 도우미 당번을 정해서 함께 일을 해나간다.
그 덕에 나는 말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걷지 못하고, 옮기지 못하지만 이 곳에서 존엄을 지키며 안락하게 살아가고 있다.
정말 냉정하게 말해 벨기에 사회에서 나라는 사람은 국민으로 인정조차 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느날 소리없이 죽거나 사라져도 슬퍼할 이유가 없음에도, 누구도 그것을 바라지 않으며 서로의 삶을 지탱해주고 있다.
 
6. 탈시설 이후의 삶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어시스티드 리빙(자립지원주택)이 강력한 대안 중 하나다.
지금은 벨기에에서 오직 나만 누리고 있지만, 이것을 한국의 모든 중증 장애인들이 누리기를 꿈꾸는 것이 과연 그토록 급진적이고, 좌파적이고, 선동적인 주장인가.
벨기에에서는 외국인인 나에게도 이 기회가 주어지는데, 한국에서는 왜 장애시민에게 같은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가.
노인은 또 어떻고, 아동은 또 어떤가.
왜 지금 우리 사회는 어시스티드 리빙과 통합된 공동체의 삶을 꿈꾸는 이들에게 '터무니없다' 또는 '돈이 많이 든다'는 평가만으로 좌절시키고 마는가.
 
7. 넷플릭스에서 '어시스티드 리빙'을 '실버타운'으로 일괄 번역하는 것을 보며, 한국 사회에 몸이 불편한 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대안적 주거 공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지금 우리에게 존재하는 건 아프고 가난한 사람들끼리 가두어져야 할 시설, 돈있는 사람들끼리 살아갈만한 실버타운. 두개의 선택지밖에 없다.
제발 시설에만 들어가지 않게 해달라는 주인공 아내의 간절한 바람(유언)의 무게를 한국 사람들이 과연 공감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는 장애인의 문제였지만, 이제부터 노인의 문제가 될텐데,
지역사회에서의 통합된 삶을 대안에서 삭제한 채
나는 돈많은 사람들이 실버타운 가고, 돈없는 사람들을 대형 시설에 두는 이분법적 문제만을
한국사회의 영속적인 대안으로 제시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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