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는 김치 이상의 무엇이다.
김치를 주고 받는 다는 것은
관계의 또 다른 확증이다.
일상을 공유한다는 관계의 업그레이드.
십년 넘게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엄마의 김치 맛이 기억나지 않을 때나
간만에 맛본 엄마의 김치 맛이 달고 짜게 변했을 때,
당황한다.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닌 것 같다.
내키지 않는 김치를 억지로 떠받아야 할 때
짜증난다.
아빠의 강권에 못이겨,
얼굴도 제대로 못본 아빠의 N번째 배우자가 만든 김치.
얼떨결에 내 품에 안긴 김장김치.
김장김치를 받으러 가도
아빠네 지하주차장에서 김치만 받고
나는 돈을 건네고 맞교환한다.
그렇게 아빠가 '내 딸을 챙겼어' 하는 위안을 사온다.
올라가서 낯선 문지방을 넘기도 싫고
올라오라는 말에 거절하기도 싫은데
올라오라는 말도 없다.
아빠와 나 사이에는 엘리베이터 만큼의 거리가 있다.
싱크대에 서서 받아온 알타리 무김치를 손으로 헤집어
한 입 베어 물으니
쌉쌀하니 코끝이 찡하다.
낯선 김치 맛이다.
아빠는 낯선 곳에서 살고 있구나.
제발 '맛이 기가 맥히지?' 하고 묻지좀 말아요.
한때는 한 상에서 같은 김치를 먹었는데
이제는 각각 흩어져 서로 다른 김치를 먹고 산다.
각자의 방향이 다른것처럼
각자의 김치 맛도 달라지고 있다.
냉장고에 모인 다른 출처의 여러 김치들.
괜한 체증 날듯한 속을
이웃 동생이 가져다 준 칼칼한 겉절이로 갈음한다.
김치 가지러 먼 길을 달리며 속으로 여러 번 되뇌인 말,,
김치는 김치일 뿐.
그런데 김치는 또 김치뿐이 아니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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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오늘이라며 페북-혼자보는 글-에 떴네요
그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고.
후련할 줄만 알았는데
돌아가시니
슬프기도, 부끄럽기도 합니다.
현재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능력껏 사랑하는 사람이
승리하는 사람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