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도 멀고 큰 딸이라서 친구나 주변지인은 물론 친정엄마한테도 내색하기 조심스러워서 82쿡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하면서 조언도 얻고 힘을 받으며 이겨냈던 것 같아요. 내내 제 마음 살피면서 시집살이 당하는 것도 서러운데 얼굴 상해 늙어버리면 더 억울하다 싶어서 억지로라도 명랑하게 웃으며 지냈고 운동도 열심히 했죠.
(꼭 얼굴을 말하려는 게 아니예요. 표정, 분위기 등 외형적 모습을 말하는 거죠. 50대가 설마 팽팽하겠나요... 그런 분도 더러 계시겠지만.)
덕분에 텐션 좋은 50대로 살아남았는데 문제는 잘 참고 잘 무시하고 요령껏 피해다니는 능력은 생겼지만,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사람 몇 번 만나보고 시모, 시누 비스무리한 스멜이 풍기면 거리를 확 벌린다는 거죠.
저희 시모가 저 삼십대 때 요령 없이 만나기만 하면 말로 패더라구요. 주변 사람들이 하도 말리니 저 사십대 때는 비꼬기, 간보기, 시누랑 합세해서 왕따 시키기 등등을 시전했었죠. 그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면서도 꿋꿋이 버텼어요. 압박한다고 굴욕감을 느끼거나 무력감을 내색하면 지는 거다 싶어서 말이죠.
그렇게 이겨낸 시간인데... 그게 트라우마가 된건지 꼬인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 간보기하면서 잔머리 굴리는 사람을 보면 제가 질색을 해요. 그 사람들도 저처럼 나름 사정이 있고 이유가 있는 걸텐데 곁에 있으면 불편하고 도망가고 싶어지거든요.
남편은 시모 앞에서 "어머니는 쟤한테 시집살이 시킬 만큼 죄다 빠짐없이 다 했다."라고 말하는 사람인데
가끔 사람 멀리하는 저한테 "사람 사는 게 그래. 우린 다 중생이잖아. 이꼴저꼴 보고 사는 건지. 넌 저꼴은 안보고 살겠다고 사람을 멀리하잖아."라고 말하거든요. 오래된 친구들, 가족 외에는 좀처럼 곁을 내주지 않고 산지 꽤 됐어요.
지나간 시간 속에서 내가 당한 것들을 객관화하며 자기 연민이나 피해의식에 빠지지 않으려 애쓰고 살았는데 아집이 생기는 나이 오십에 문득 나 이대로 괜찮은 걸까 라는 생각이 드네요. 혹독한 시집살이에 제 대인관계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 씁쓸해요.
70년대 생이라 젊어서 그제껏의 가족 중심 문화, 집단주의에 작은 회의감이 들었었는데, 나이 오십에는 내가 너무 쉽게 사람을 솎아내는 건 아닌가 하고 의구심이 들더라구요.
친구들에겐 제가 감사하게도 따뜻하고 이해심 많다는 평을 받는지라 가끔 오랜 인연을 손절하는 것에 대해 의논을 하기도 하는데 예전 같으면 망설임 없이 손절해라, 내가 있잖아 했었는데 요즘은 저도 헷갈려서 할 말이 없더라구요. "글쎄 나도 그게 고민이야... 어렵네."라고 대답해주곤 합니다.
삼십대엔 열심히 살면 내 맘 알아주려니 했고,
사십대엔 내 맘 알아주지 않는다고 상처받지 말고 내 팔 흔들고 살자 했어요.
오십대엔 어찌 살아야할지 82쿡 선배들한테 여쭤보고 싶어요.
나이가 들어 사람 귀하다 싶어 그런 탓도 있겠지만, 늘 그랬던 것처럼 82쿡 선배들의 한마디에 제가 놓치고 가는 것들을 지키고 가게 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