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정말 깔끔하고 부지런한 남자와 결혼했는데 행복하네요.

저는 정리정돈도 잘 못하고, 잠도 많고, 특히 프리랜서 일을 오래 해서 아침에는 거의 자고 12시 다 돼서야 일어나곤 했어요. 남편과는 정말 짧은 연애를 하고 결혼했는데 처음에 남편 오피스텔에 가보고는 솔직히 좀 겁이 났어요. 정말 모든 물건들이 너무너무 반듯하게 정리돼 있고, 무슨 호텔처럼 깔끔한 거예요. 정리안된 저희집을 보여주기 싫어서 저 혼자 자취하는데도 정말 남편을 집에 못 오게 하고 주로 남편집에서 데이트를 했어요. 저랑 같이 있다가도 새벽 5시면 일어나서 1시간 운동을 하고 출근하더라구요. 

 처음에 결혼을 한 후에는 좀 고단했어요. 워낙 깔끔하고 정리정돈이 안되면 스트레스 받는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저는 노력을 하는데, 그래도 남편눈에는 거슬리고 정리 안된 부분이 많았겠죠. 집에 있는 물건 또 샀다고 지적 받으면 서러울 때도 있었구요. 하지만 저는 남편기준에 맞춰서 깔끔하고 부지런해 지려고 노력하고, 남편은 또 그런 저를 고맙게 여겨줬구요. 

  이제 결혼 4년차가 돼서 저도 정리정돈하는데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 저도 깔끔하게 사는게 더 좋아졌어요. 남편은 작은 휴지하나도 대강 놓는 법이 없고, 지나간 모든 자리를 다 정돈해놓는 사람이거든요. 가끔 제가 늦게까지 약속이 있다가 집에 들어간 날에 화장대 서랍을 열어보면 화장품이 싹 정리돼 있거나, 부엌 찬장 속이 싹 정리돼 있죠. 정리도 분명 재능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한다고 해도 남편이 정리하는 걸 절대 못 따라가요.  처음엔 대체 왜 욕실장 안 수건이 색상별로 분류돼 있어야 하는지 납득을 못해서 짜증이 날 때도 있었는데(보이는 것도 아니고욕실장 안에 있는건데) 그냥 하다보니 이제 저도 익숙하고 그게 편해요. 빨래도 선입선출 원칙에 의해서 정리정돈합니다.  남편한테 빨래 개는 법도 다 배웠죠. 우산 하나도 대충 접지 않고, 백화점에서 파는 우산처럼 반듯하게 예쁘게 접는 남자입니다. 저는 아직도 우산은 반듯하게 접는게 귀찮아요. 

 남편은 전날 회식이 있어서 술을 마신 날에도, 몹시 추운 날에도, 비가 오는 날에도 새벽 5시면 일어나서 한 시간동안 운동을 하고 들어와요. 저는 오랫동안 비혼주의자였거든요. 늦게까지 술 마시고 들어와서 가족을 괴롭히던 아빠, 다음날엔 숙취로 물 떠오라고 엄마에게 소리지르던 모습, 어지러운 집안 그 모든 것들이 싫었고, 혼자 고요하고 자유롭게 사는게 좋았으니까요. 그냥 편하게 살지, 왜 늦게 결혼해서 고생하냐는 말도 들으면서 결혼했어요. 

  남편과 결혼하고 난 이후로는 저도 아침형 인간이 돼서 6시엔 일어나는데요. 일어나면 이미 남편은 운동하러 나가고 없고, 집안은 정말 호텔처럼 깔끔히 정리가 돼 있어요. 남편이 현관 안에 들여놓은 마켓컬리 박스 위에는 제가 개봉하기 좋도록 남편이 두고 간 가위와 칼이 올려져 있구요. 혼자였다면 아마 정리안 된 집에서 실컷 늦잠을 자고 더 자유롭게 하루를 시작했겠지만, 저는 이렇게 하루를 시작하는 순간이 좋아졌어요. 가끔은 저렇게 깔끔하고 부지런하고 매사에 철두철미한 남자가 어쩌면 저렇게 자기랑 다른 저에게 결혼하자고 했을까 신기하기도 했는데, 결론은 행복하네요. 행복하기까지 과정은 좀 힘들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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