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후반 K-장녀입니다.
이혼하고 자녀는 없고 20년 가까이 혼자 살고 있습니다.
5년 전에 암진단을 받아 치료를 했습니다. 아직까지는 괜찮지만 마음 한켠이 늘 불안합니다.
몇 년 전에 퇴직을 해서 연금을 받는지라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남동생은 결혼해서 서울에서 살고 있습니다. 엄마에게는 무심한 아들입니다.
80대 초반 엄마가 건강이 좋지 못하지만 혼자 생활하실 수 있어서 가까이 사는 제가 자주 만나뵈며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올해 들어 엄마가 연달아 큰 병을 얻으셨어요.
황반변성으로 양쪽 눈 시력이 나빠지셨는데 발목 골절을 당해 입원을 하셨습니다.
발목 골절은 석달 정도 지나면 걸으실 수 있을텐데 집으로 돌아가셔서 이전처럼 혼자 지내실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당분간 제가 엄마 댁에 가서 살면서 식사도 챙겨드리고 재활을 도울 예정입니다.
실은 저는 엄마에게 애증의 감정을 가진 K-장녀입니다.
엄마는 실업자에 암환자였던 아버지 대신해서 가장 노릇을 하며 저희를 키우셨습니다. 대학가려고 집을 떠난 남동생보다는 저에게 전적으로 의지하셨지요. 저를 학대하신 적은 없지만 온순하고 만만한 저에게 성질을 부린 적은 많습니다. 아버지가 30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그 이후로는 더 그랬습니다. 제 꿈이 엄마에게 탈줄하는 것이었어요. 결혼도 그런 이유가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작년부터 저에게 새출발을 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미국에 사는 남자를 만나게 되었어요. 12년 뒤에 은퇴를 하면 한국에 와서 살고 싶어하는 분이었어요. 작년에 저를 만나러 한국에 왔고 올해는 제가 미국에 가서 두 달을 지내다가 왔습니다. 건강이 악화되어가는 엄마에게 그 소식은 공포였습니다. 엄마는 제가 왜 미국에 가는지를 남동생 부부에게는 말하지 않으셨어요. 아들 며느리 스트레스 받을까봐요. 그리고 제가 그 남자와 잘 되지 않기를 바라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지금까지 저에게 재혼을 권하신 적이 한 번도 없는데 갑자기 저에게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해서 한국에서 사람을 만나보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갑자기 분노가 솟구쳐 너무 힘들어서 상담을 받았습니다. 제가 원가족으로부터 분리가 되어 있지 않다는 상담사님의 진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엄마보다는 저의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해주셨어요.
문제는 제가 12년 동안 미국에 가서 살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겁니다. 그 분이 은퇴를 더 빨리 할 수는 없는 상황이고요. 미국에서도 시골 깡촌 같은 곳인데 두 달 있어보니 외롭고 답답하더군요. 미국 이민가서 주부로 살면서 우울증에 걸리는 분들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저는 영어 전공자라 의사소통은 문제가 없는데 나이가 들수록 외국에서 살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암 때문에 매년 병원에서 정밀검진을 받아야 하기도 하고요. 제가 미국에 있는 동안 엄마가 갑자기 골절을 당하여 일정을 앞당겨 귀국했고...미국 생활이 쉽지 않았던 저는 그분에게 엄마의 건강 때문에 다시 미국에 오기는 어려울 것 같다라는 말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간호간병통합 병동에 입원중인 엄마에게도 그렇게 말하고 안심을 시켜 드렸는데. 엄마는 그 말을 듣고 기운을 차리시는 것 같았어요.
제 솔직한 마음은... 미국 생활은 힘들었지만 엄마에게 벗어나고 싶어서 그 분과의 관계를 다시 이어가고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평생 미국에서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닌데 살다보면 적응하지 않겠냐는 생각도 들고요. 제가 환갑을 바라보는데 누군가를 다시 만나기는 어려울 것 같고요. 혼자서 엄마 간병을 시작해보니 막막하고...남동생과는 엄마 문제를 의논하기도 어렵습니다. 엄마에게서 달아나고 싶어 결혼을 택하는 것은 올바른 선택이 아니라는 것도 배웠고 그 분이 저에게 청혼을 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동생에게 엄마를 떠넘기고 탈출하고픈 마음이 드는 저...괴롭습니다.
제 실수로 글이 삭제되어 다시 올렸어요. 댓글 달아주신 분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