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기자회견을 하지않은 한강작가에 감동.

전쟁으로 사람들이 저렇게 많이 죽어나가는데 무슨 잔치며 무슨 기자회견이냐...고 한강 작가가 말했다고 한다.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보다 기자회견 하지 않겠다는 그녀의 이 말이 더 강력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다큐멘터리도 그렇지만 문학은 근본적으로 이 세상과의 불화로부터 태어나는 것이다. 불완전한 것, 부조리한 것, 고통스러운 것, 슬픈 것, 분노가 그 태반이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면 왜 문학을 하겠는가? 문학 속에 따스한 빛은 그런 세상 속에 시인이 혹은 소설가가 발견한 성냥팔이 소녀의 성냥불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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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창작의 토양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공감 능력은 상상의 능력이며, 이 상상은 자신의 고통의 경험으로부터 나온다.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기는 실로 어려운 것이다. 가난해보지 않은 사람이 과연 가난의 서러움을 알까? 평생 남의 밑에서 일해본 적 없는 사람이 말단 회사원의 주눅든 피곤을 알까?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로 살아온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흙수저가 느끼는 모욕감을 진정 이해할 수 있을까? 더 곤란한 문제는 열심히 학교 공부를 해온 모범생들은 실제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면서 머리로 자신이 ‘공감’한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이다. 이 정권이 그렇듯 무엇을 모른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것이 가장 나쁘다. 
머리로 공감하는 이런 자부는 작품에서 다 뾰록이 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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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유로 기자회견을 하지 않겠다는 그녀의 말은, 역설적으로 그녀가 얼마나 진정성 있는 작가인지를 드러내는 한 지표로 내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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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문학상을 받았다고 그녀가 대한민국 작가의 최고봉이라는 식의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나는 개인적으로 한강과 교분이 없다. 그러나 기자회견을 하지 않는 작가라면 저런 찬사는 몹시 불편해할 거라고 짐작한다. 
외국에선 살아본 적이 없으니 비교는 불가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서열주의에 함몰되는 경향이 짙다. 모든 것에 서열을 매겨야 직성이 풀리는 것 같다. 그러니 일류, 일등급, 일급 등 순위에 목을 맨다. 뿐만 아니라 그 서열 일순위가 누리는 사회적 혜택을 본인들은 물론 저 순위 바깥의 계층들까지 승인을 해버린다. 그리고 결코 도달할 리 없는 그 일순위의 세계로 진입시키기 위해 일단 대입부터 서.연.고를 외치며 자식들을 채찍질한다. 모두가 달리고 있으니, 이것이 우리 사회의 불평등 심화에 기여한다는 인식조차 하기 어렵다. 그런 구도가 체화되어있어 문학에 있어서도 ‘최고’의 개념을 자연스럽게 적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문학이야말로 서열화하기에 매우 곤란한 분야다. 상을 받는다는 것은 그 작품이 훌륭하다는 평가가 될 수는 있겠으나 상과 상 사이에 서열을 매길 수는 없다. 노벨 문학상을 받지 않았어도 한국에는 한강과 같은 훌륭한 작가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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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상을 오래 심사해보면, 상은 일종의 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주 탁월한 작가임에도 그해 경쟁작이 어떤 것인지, 심사위원이 누구인지, 해외라면 번역가가 누구인지, 그 해의 시대 분위기가 어떤 것인지에 따라 한번도 상을 받지 못하고 매해 탈락하는 경우도 있다. 좋은 작품과 나쁜 작품은 있을지언정 문학에 1등, 2등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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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년이 온다>를 읽었을 때의 전율을 기억하고 있다. 한강이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는 것이 놀라운 일은 아니다. 페북 온 세상이 축하와 기쁨의 흥분으로 들끓는 것도 당연하다. 한강은 한국인의 자존감을 한껏 높여주고 있다. 마땅히 축하할 일이다. 단지 그래서 최고봉이라고 외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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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페북을 보니 어떤 어이없는 작가가 “<소년이 온다>는 5·18이 꽃 같은 중학생 소년과 순수한 광주 시민을 우리나라 군대가 잔혹하게 학살했다는 이야기다. <작별하지 않는다> 또한 제주 4.3 사건이 순수한 시민을 우리나라 경찰이 학살했다는 썰을 풀어낸 것”이라며 “‘역사적 트라우마 직시’를 담았다는 소설들은 죄다 역사 왜곡”이라고 썼다고 한다. 도대체 이런 이들은 어떤 역사를 배웠단 말인가. 


5.18과 4.3 다큐를 하며 얇게나마 공부를 해본 입장에서는 그저 한심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역사 왜곡이라면 제발 좀 근거를 대고 말하시라고. 이따위 주장을 하는 인간들은 근거는 없이 주장만 하는 게 공통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단 소설이나 읽어보고 말하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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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와 책 표지 사진은 너무 범람하고 있으므로, 아래는 아무 상관없는 며칠 전 멋진 노을 사진임.

 

김옥영 페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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