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엄마 이야기2


지난 일요일 어머니는 아픈 몸을 이끌고 외할아버지 묘소에 성묘를 가셨습니다.
모두 말렸지만 어머니의 고집을 꺾을수는 없었어요
아마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외할아버지와의 만남을 어머니는 병원에서부터 준비하고 계셨나 봅니다

 

어머니는 작년 가을 간암 선고를 받으셨습니다
혼자병원에 가서 그이야기를 듣고 병원 문을 나설 때 가을 하늘이 유난히 맑고 푸르러 가슴이 뛰었다던 어머니.
오는 길에 평소에 먹고 싶던 것이나 마음껏 먹어야지 결심하고 과일을 고르셨다는데 결국 손에 쥔 것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썩고 뭉그러진 떨이 복숭아 한 바구니. 

 

평생을 가난 속에 내핍과 절약으로 살아오셨기에 그 순간에도 비싼 과일은 손이 떨려 살 수 없었던 어머니.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맨손으로 올라온 서울.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해 막내 동생을 등에 업고 어머니는 남의 일을 나가셨습니다.

그때 우리가 매일 먹은 것은 퉁퉁 불은 수제비였어요. 하루 종일 먹을 수제비를 끓여놓고 어머니가 일을 나가시면 밖에서 놀다가 들어와 오빠와 함께 싸늘하게 식은 수제비를 떠먹었지요. 
바람 부는 한강변에 나가 캐어온 꽁꽁 언 달랑 무로 담근 김치가 유일한 반찬이었습니다.

 

그렇게 몸을 아끼지 않고 고생한 끝에 장만한 우리 집. 포도나무가 울창했던 그곳에서 콩나물국 아니면 우거짓국으로 세끼를 다 때워도 마냥 행복했던 시절.
그때가 아마 어머니 일생의 절정이 아니었을까요?

초등학교 6학년 1학기가 끝난 어느날
그 집마저 경매로 넘어가 단칸 월세 방으로 이사 가던 날, 어머니는 서러운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단칸방에서 다시 집을 사고 우리 사 남매 모두 대학 졸업을 시키기 까지 어머니가 흘린 땀방울, 그건 땀이 아니라 눈물이 아니었을까요.


어머니 같이 살지는 않겠다고 소리치며 어머니가 반대한 결혼을 한 나. 
그러나 어머니가 살아온 길과 너무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놀라곤 합니다.

가난한집 맏며느리로 시집와 시동생 둘 대학 뒷바라지를 하다 보니 내가 입은 옷은 동생들이 준옷이 대부분이고, 아이들 옷도 친지들에게 물려받아 입혔지요.

 씽크대도 냉장고도 장롱도 우리 집에는 돈 주고 산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나도 모르게 온몸으로 내게 삶의 교훈을 보여준 어머니의 뒤를 따라 걷고 있었음을 느끼고 있는데…….

작년 가을 이후 어머니는 나날이 쇠약해져 갔습니다.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하는 일을 반복했고, 이젠 속이 울렁거려 아무것도 잡수시지 못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외할아버지.외할머니 성묘를 갔다 오셨습니다.
오는 길에 밤도 따오셨다며 활짝 웃으시는 어머니

어쩌면 어머니는 이렇게 하나하나 우리 곁을 떠나실 준비를 하고 계신 것은 아닐런지요...

어머니 가슴만 아프게 해드리고 떠난 맏딸로 아직 어머니에게 보여드릴 그 무엇도 없는데 어머니는 굳게 잡았던 내손을 놓으려 하시네요.


어머니, 아직 떠나시면 안돼요. 어머니가 눈물로 키운 어린 묘목이 아직 큰 나무로 자라지 못했는데 이렇게 삶을 정리하고 떠나시면 남은 저는 어떻게 하나요. 잠시만 더 곁에 계셔주시면 자랑스러운 딸이 될 것만 같은데…….
내년도 후년도 어머니가 곁에 계셔주시리라 믿으며 글을 맺습니다.

 

ㅡ 내가 쓴 이글을 머리맡에 두시고
읽고 또 읽으시던 어머니는 딱 1달뒤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빠르다면 빠른 나이.향년65세.

올해는 살아계시면 
어머니 연세 88세가 되는 해입니다.

 
해가 갈수록 어머니가 그리워집니다.

작년 한참 어려운일들을 
겪으며 나보다
힘든일이 더 많았던
울엄마의 삶을 떠올렸습니다.

 

그래  온식구 목숨줄인 양담배목판 목에 매고 달리고 또 달렸던  엄마처럼 강하게 살자.
결심하고  세상과 싸웠지요.
언젠가
엄마를 만나면
잘살았다
칭찬받는 딸이 되고 싶습니다.

엄마. 엄마.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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