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노인들은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잖아, 할어버지도 그래?' ' 아니 나는 오래 살고 싶다. 옛날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세상이 좋아지고 있으니 나는 죽고 싶다는 생각 한적이 없다'는 할아버지와 달리 맨날 '어서 죽어야 할텐데'를 주문처럼 말씀하시곤 하던 할머니께서 갑자기 뇌출열로 쓰러지신 날 그날은 90세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제삿날이었다. '자네는 10년만 더 살다 오게나' 하셨던 할아버지의 유언보다 더 살다 할머니는 쓰러지신 후 3개월 지나 97세에 돌아가셨다. 할아버지가 마냥 무서워 동네 친척 고모댁(할아버지쪽)에서 살다시피하다 실제 부부로 살기 시작한 것은 18세. 14살때 가난한 친정의 장녀로 태어나 입 하나 덜기 위해 9살 많은 할아버지에게 시집을 왔다고 한다. 할아버지께서 엄마에게 '내가 오냐 오냐 했더니 버릇이 없으니 에미 네가 이해하라' 라고 하실 정도로 할머니를 많이 이뻐하셨고 금술이 좋으셨다. 할머니는 시집 살이를 하지 않으셨다. 일찍 부모님을 여의신 할아버지의 가까운 친척들이 어린 할아버지의 재산을 마음대로 처분하여 그 많던 논과 밭이 단출해졌을 때 시집을 오셨다.  일제 시대 남자들도 하기 힘들다는 쟁기 대회에 나가 1등을 하여 논 몇마지기를 상으로 받기도 하셨다고도 하고 아무튼 여장부셨다. 목소리도 크고 때론 막무가내셨지만 할아버지에게는 순종적이었다. 일제시대 결혼하여 만주로 이사를 간 여동생을 만나러 가며 할머니는 본인이 삼고 지으신 삼베를 갖고 가 팔아 돌아오는 길 기차안에서 일본 순사가 몸수색을 했지만 돈을 뺏기지 않으셨다. 그때 업고 간 어린 아들의 똥기저귀에 숨겼기 때문. '할머니 더럽지 않았어?','나는 똥이 하나두 더럽지 않았다. 그 돈이 어떤 돈인데'.  작지만 뚱뚱한 중국할머니 인형을 보면 돌아가신 할머니가 떠오르곤 한다. 하관 직전 본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새처럼 작디 작은 소녀 모습이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글을 올려야 한다니 먼저 생각나는 건 할머니 생애에 대한 호기심으로 귀담아 들었던 일화들. 가볍고 서툰 글 올리니 양해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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