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갱년기가 되니 지나온 감정들이 불쑥

갱년기 한가운데를 지나는 중인데요..

 

어린시절의 나는 뭐든 크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성향에 뭐든 그러려니 하는 무던한 아이였던것 같고..엄마는 본인이 생각하는 엄마로서의 책임감ㅡ세끼 밥 열심히 해주고 돈 잘 벌어야한다ㅡ에 충실했어도 감정적인 교류가 있거나 다정한 스타일은 아니었어요. 잘 때리고 소리 지르고.. 초등 저학년때 작은아씨들을 읽고 왜 엄마는 작은아씨들 엄마 같지 않냐고 울면서 물었던 기억도 있네요..

 

돈을 잘 벌었어도(이건 나중에 안 사실) 알아서 자식들에게 쓰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전 우리집이 여유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애들 키우느라 고생많은 부모님을 위해 손벌리기 싫다는 생각(k장녀의 착한아이 콤플렉스)에 고3 내내 저녁 도시락 대신 학교앞 분식집에서 제일 쌌던 메뉴.. 라면을 먹고 다녔어요. 나중엔 라면만 봐도 울렁거리고 한숨이 났는데 같이 밥먹는 친구가 가끔 먹는 돌솥비빔밥이 어찌나 부러웠는지.. 가끔 밥 먹게 용돈 조금 더 달라는 얘기도 못했을까ㅎㅎ

 

동생들보다 공부도 별로였고 도드라지지 못해서 그랬는지 첫째는 살림밑천이라며 자연스럽게 집안일을 시키는 엄마덕에 초등때부터 집안 설거지 했었고..지금 생각나는게 고등학생때 시험기간이었는데도 어김없이 식구들 저녁상 치우고 설거지를 해야했어요. 바로 아래 동생은 시험공부한다고 독서실로 나서는데.. 이 상황이 갑자기 화가 나서 설거지통에 손을 푹 집어넣다가 물 속에 있어 안보이던 식칼에 손이 베었었죠.. 저 서울 토박이고 멀쩡한 아파트에 살았어요. 어디 시골이 아니고.. ㅎ

 

뭔가 제대로 인지하기 시작한건 너무 운이 좋게 제 수준보다 훨씬 좋은 서울 메이저 대학에 진학한 후.. 뭣모르던 아이가 나보다 훨씬 더 나은 사람들을 만나고, 세상을 배우고.. 그 와중에 돈없어서 근검절약하는줄 알았던 부모님은 대학생이 된 동생들에게 차를 사주고 백만원 넘는 무스탕(그당시에 유행이었죠)을 사주고 애플컴퓨터를 사주고.. 전 그 예쁜 나이에 돈 없으니 이것저것 싸구려 사서 잘 매치도 안되는 패션 테러리스트였는데ㅎㅎ 이게 뭐지? 싶더군요.. 나중에 왜 나한텐 그런거 안사줬어?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넌 사달라고 안했잖아? ..

 

엄마가 다정해졌다는 생각이 든건 대학생이 된 이후였던것 같아요. 결국 어찌저찌 해서 자식들중에 제일 나은 대학에 갔고 졸업 후 취업도 좋은곳에 운좋게 잘 되서 돈도 잘 벌었거든요. 제 인생에 대운이 든 시기였나봐요. 그 대운도 결혼과 함께 사라지기 시작했지만..

어쨌든 결혼 후 아이 키우고 엄마로 며느리로 아내로 자식으로의 역할을 하며 사느라 바쁘다가 오십줄이 되어 보니 이젠 나이들고 힘없는 엄마가 저를 제일 의지하고 너없으면 못산다 사랑한다며 사랑으로 충만한 엄마가 되었네요.

아이 키우면서 한 번씩 생각이 났어요. 세상에 애가 고3인데 야자때 저녁 먹으라고 왜 용돈도 잘 안챙겨줬을까? 그 땐 왜 이랬을까 저랬을까...

 

다 지난 일이고 지금은 나에게 성의껏 대하시고 의지하고 계시니 잊고 지내다가도 한 번씩 불쑥 본인 성격이 나와서 부딪힐때마다 묻어둔 의문들이 치고 올라와서 너무 힘드네요.

어젠 다른 사람 역성드느라 저에게 소리지르고 돌아와서 바로 눈치보며 미안하다고 하는 엄마에게 갑자기 서러워져서 '엄.마.는. 왜. 평.생. 나.한.테. 이.래?' 소리가 단전에서 올라오더군요. 미안하다고 우는 엄마에게 바로 미안하다고 하고 잊읍시다 했지만 돌아와서 누워 생각하니 참.. 힘의 무게는 이제 나에게 더 있으니 결국 약자는 엄마인데 어떻게 해도 죄의식이 느껴지는 상황.. 갱년기라 감정이 들쑥날쑥해서 더 힘든가봅니다..

한편으론 아이 키우는게 정말 무서운 일이구나, 한 인간에게 평생 자유롭지 못할 기억들이 키워지면서 생성되는구나.. 인간은 결국 잘나든 못나든 어릴때 가진 결핍을 채우기 위해 발버둥치는구나. 내 아이는 나에게 키워지면서 어떤 감정적인 결핍을 가지고 있을까 생각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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